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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래를 찬 강아지를, 목장에 갇힌 양의 새끼를, 암만 친들 무슨 소용이랴, 그따위 약한 놈의 새끼들, 얼간이 망나니들, 쩍하면 울고 약차하면 물러서고, 남의 힘 부러할 줄이나 알고, 일껀해야 그 잘난 에미 역성이나 바라고 에미 아니면 못 사는 줄 알고 - 배 밖에 떨어지면서부터 에미애비 없이도 사는 거 아닌가 - 뭐 바쁜 일이 있으면 에미부터 찾고 싸움하다 울고 들어오기 일쑤고, 울고 들어와선 편역 들어 줄까 바라고… 이따위에 올 선물은 묻지 않아도 빤하다.
민우가 거의 반생을 살아온 경험으로 보아도 그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민우 자신이 그 성격 때문에 얼마나 가엾은 꼴을 당했는가. 비오는 날 고무신을 끌고 가는데 자동차란 놈이 호기 있게 진창을 탁 끼얹고 지나가지 않았는가. 그러면 민우는 울상을 하고 입 속으로 두덜거렸지 자동차 번호를 외워 가지고 자동차부에 가서 한바탕 후려대려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또 조고만 물건 하나를 사러 상점에 들어갔다가도 이것저것 주물락거리다가 종내 사지 못하고 돌아오는 때, 남의 조소나 손가락질을 꺼릴 것 없이 왜 버젓이 어깨를 살구고 나오지 못하는가.
길을 가는데도 하많은 사람 중에서 못생기고 순하고 늙은이는 자기를 보고 길을 묻는다. 자기는 그만치 남에게 물쩍해 보이고 만만해 보이고 어리무던해 보이는 것이다. 제 약점을 행길가에서도 남에게 들키는 것이다.
그러나 새끼들만은 좀 뼈대가 있는 연놈을 만들고 싶다.
민우는 마침내 이불을 탁 차고 일어났다. 괜히 속이 찌푸드하다. 날씨조차 흐리터분해서 집안은 더한층 침울하다.
***
그럴싸 보아서 그런지 아내의 서두는 품이 여느 날보다 행결 더 고분고분하다. 오늘 민우가 어디로 가는지 벌써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장차 민우가 돈벌이를 해서 한 집에는 늦게나마 안도와 즐거움이 오리라는 생활설계도가 지금 아내의 가슴에는 정녕 그려져 있으리라.
민우만 약게 돌아서 직업을 구하자고 하면 누구보다도 유력한 소개자가 있는 터이니 안 될 리 없다. 그런데 민우도 일자리를 잡으려고 하고 또 오늘은 그 유력한 소개자에게로 가는 것이다.
민우의 밥상을 차리는 아내의 손은 벌써 약간 떨리기까지 한다.
"생계란 가져올까요."
아내는 감기가 들었는지 코를 약간 들여그며 얕은 콧소리로 묻는다. 마땅히 애교가 없어선 안 될 마당이리라.
그러나 민우는 동작으로도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그 국에 말아 잡수시구려."
아내는 민우의 구미를 돋워 주려는 듯이 제가 먼저 입을 다신다. 민우는 역시 잠자코 국그릇을 비끗 내려놓고 숭늉이나 달라는 뜻으로 가마를 흘끔 본다. 아내는 꼭 밥상 곁에 붙어 앉아서 혼자말 모양으로 무슨 반찬을 좀 만들어야 하느니 사람이란 고기를 많이 먹어야 근력이 나는 법이니 하는 등 이러루한 소리를 되씹는다. 그리고 별안간 생각난 듯이 요사이 신문을 보니까 소위 무슨 강장제(强壯劑)라는 것은 대개 소족이나 소꼬리 같은 것을 고아서 만든 것이라는 것도 이어 말해 본다.
그러는 판에 저어편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아이 연놈들이 얼려서 짝자그르 야단이다. 쌈이 생긴 것이다.
민우는 한번 찔 그편을 깔보고는 그대로 못 본 체한다.
아이들의 쌈은 더 법석판이 된다. 술치로 머리를 때리기도 한다. 필시 대가리 큰 놈들이 딸년의 밥이나 밥그릇 옆에 놓아 둔 누룽지나 반찬을 슬쩍 차다가 먹은 속이다. 그래서 서로들 그랬느니 안 그랬느니 하고 얼려 싸우는 모양이다. 결국 울음이 터졌다.
"얘, 울지 말어!"
민우는 대번에 소래기를 질렀다. 민우의 성미가 비록 제 자식일지라도 차곡차곡 타이를 줄을 모른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보고도 못 본 체해 버리고 매우 언짢은 일이면 한두 마디 툭 쏘아붙이고 만다.
"싸우면 싸웠지 쩍하면 울긴 왜 우는 거냐."
또 울면 진 놈 하나가 울겠지. 이긴 놈 진 놈 없이 쌍나팔을 부는 것이 더욱 언짢다.
울음소리는 딱 그쳤다.
"계집애년이 툭하면 제 형들을 깔고 들려니. 저년 이 담에 시집가서도 저럴까."
아내는 역시 사내새끼들 편이다. 어쨌든 계집애부터 나무라는 것이 아내의 버릇이다.
"뚱뚱보, 데부짱."
계집애년이 눈을 깔뜨고 술치로 에미 때리는 시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