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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어 김 무언가 그전 연극두 하고 하던 얼굴이 곱상한 사람 있지 않소. 그 사람이 자동차부엘 다니더군그래. 요전에 보니까."
수득이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고는 잇달아서,
"요전에 내호로 가자고 다꾸시 타러 갔더니만서두 그 사람이 자동차부에서 호각을 불구 있겠지."
하고 발을 단다. 그 자동차부에서 호각 부는 김동일이라는 사나이보다 갑절 나은 자리에 있는 자기 남편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던 것은 물론이지만 또 한편 어떻게 자기 남편 자랑을 터보았으면 해보기도 한다. 그의 남편은 어느 목재회사 무슨 주임으로 있다.
"그 사람 취직한 지 언제라구… 건데 그 사람보다 청년회패 중에서는 그전에 극장에서 연설두 하구 제일 똑똑하다던 박의선인가 한 사람은 출옥하자 얼마 안 돼서 재판소 누구라나 한 사람의 소개로 도청 무슨 과에 취직했는데 월급도 그 패 중에서는 제일 많이 받는대."
민우의 아내 말이다. 아내는 인제 자기 남편이 그 사람보다도 나은 자리를 얻으리라 생각하니 속으로 슬며시 기뻐진다.
"참 세월이 좋아졌어. 그전 같으면 거게 한번 다녀오기만 하면 아무 데두 명함 낼 엄두를 못 하더니만서두 지금은 그런 사람이 외려 더 잘 씨이는구려 글쎄."
만수네 어머니 말이다. 만수네 아버지는 어느 촌 사립학교 교원을 무슨 일 때문에 밀려난 후 인차 목공을 배워 가지고 조고마나마 지금은 자영하고 있다. 살림은 교원 노릇 할 때보다 차라리 나은 편이나 아내는 역시 선생 노릇 하던 그 시절이 낫다고 생각한다. 학생 집에서 달걀꾸러미 가져오던 생각을 아무리 해도 잊을 수 없다. 그나 그뿐이랴.
그 동리에서는 모두들 안 선생 댁이라고 존대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지금은 쬐고만 까까중이 어린 놈이 와서도 여기 목수 어디 갔소, 하고 성씨조차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은 인물로 보든지 지식으로 보든지 수득이 아버지보다도 때가 벗었건만 그래도 수득이 어미 속성으로는 말 속에 늘 지질한 직업을 가질 때에는 사람 나위가 그만밖에 안되게 그런 거지 그럴싸하는 말투다.
"그때 그리구 다니던 사람들도 지금은 모두 돈벌이하고 얌전들 해 졌어. 철들이 나서 그런지 세월이 좋아서 그런지."
수득이 어미가 이렇게 말하자 곁에서 따라서 누구는 수리조합에 다니느니, 누구는 부청 토목계 칙량반으로 다니느니, 누구는 어느 회사 고원으로 다니느니, 누구는 무슨 장사를 하느니, 누구는 신문지국 기자로 다니느니 하는 이야기를 창황히 주워 댄다.
"글쎄 신문기자도 요새는 세목이면 횡재가 생긴다는구려. 관청에서랑 회사에서랑 다문 얼마씩이라두 찔러 준다니… 그전에는 신문기자라면 제일 미워하더니만서두."
그전에 지방 신문지국 기자로 있은 일이 있는 민우의 아내에게는 이런 일도 한 가지 이문(異聞)이 아닐 수 없다. 그전에는 돈 생기기는커녕 걸핏하면 때어가곤 하였다.
"그래 이 집 쥔은 어쩌우. 또 신문사 일을 보게 되우?"
제 집 자랑하고 싶은 수득이 어미가 목이 간질간질해서 민우 아내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다.
"글쎄 아직 모르겠소만 인제 신문사에는 한사코 안 있겠다구 하고…."
그러면서 민우 아내는 싱긋 웃는다. 남편은 좋은 취직 희망이 있다는 의미리라.
"그래 몸은 건강하오. 몸이 제일이지요, 그까짓 벌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만."
목수의 아내 말이다. 자기 남편이 교원 노릇 할 때보다 몸이 튼튼해진 것이 사실이고 또 각중에 그것이 제일 유복한 일이어니 생각해야 할 자기인 것도 그는 잘 안다.
"그럼 몸이 제일이지요, 우리 쥔도 나와서 첨은 창자에 털이 났다고 하며 안 자시던 고기도 자시고 국도 자시고 하더니만 지금은 몸이 팔팔결인데 글쎄, 잔밥(아이들)을 수두그러 늘어놓고 몸까지 성치 못해 보오. 어떻게 되나."
날마다 닭의 배를 만져 보고 알만 낳으면 남편 상에 올려놓는 민우의 아내도 목수 아내와 동감이다.
"아이규, 아일랑 인제 그만 좀 나소."
수득 어미가 위정 놀리는 투로 말해 놓고는 다음으로 제 집 이야기로 넘어간다.
"나는 아이 둘을 가지고도 아주 죽겠소. 복개고 성가시고… 아이 보는 애년이 혼자 힘에 부쳐서 밥짓는 애까지 하나 더 두었는데 그래도 연극 구경 한번 맘놓고 못 다닌다우."
수득이 어미 팔자 늘어진 건 이만해도 알 일이지만 그에게는 그보다 더 나은 자랑이 또 있다. 그것은, 여태 별말 없이 듣고만 있는 덕근이 아내의 존재를 새삼스레 생각한 때부터 버쩍 더 말하고 싶어진 자랑이다. 그는 슬쩍 딴전을 써서 덕근이 아내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래 그 집 쥔은 요새 바람이 좀 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