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가 석후에 식곤이 나서 시들푸러 한잠 자고 나니 정주에서는 지금 바로 아낙네들의 이야기가 한창이다.

            단 두 간 방 집인데 전등은 웃방과 정주 어름에 하나뿐이다. 슴뜬 손님이 오기 전에는 항시 샛문을 열어 놓고 그 어간에 켜놓으면 아래웃방이 다 환하다.

            그런데 오늘은 알심을 써서 민우를 편히 쉬라고 그런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입심 좋은 아낙네 마실꾼들이 한바탕 늘어지게 옥화사담을 펼 양으로 그런 것인지 샛문을 닫아 버려서 웃방은 아주 까마귀나라다.

            어린애들은 벌써 한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없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마 방 윗목에 덧놓인 윷가락처럼 널려서 혼곤히 자고 있으리라.

            민우는 낮에 시장했던 탓인지 또는 다모토리(소주) 잔이나 좋이 걸었던 때문인지 물이 키이는 것을 눌러참고 있다. 아내의 들뜬 웃음 소리만 들어도 벌써 맘에 꺼름한 점이 있어서 약간 불쾌해질싸 하였다. 아내가 어째서 저리 수선을 떠는지 민우는 그의 이야기를 차근히 밭아 들을 것도 없이 벌써 잘 안다는 듯이 혀를 한번 쩍 갈기고 저편으로 돌아누웠다. 아뭇소리도 듣지 말려는 거다. 그러나 기실 귀는 더 감가진다.

            민우가 거기서 나온 지도 벌써 거의 반년이 된다. 민우가 돌아온 후 온 집이 다만 반가운 빛과 소리로 찾던 한동안이 지나간 그 뒤에 온 아내의 당부는 제발 이제부터 되지도 않을 딴 생각 말고 살아갈 연구 - 아내는 늘 이렇게 말한다 - 를 하라는 거다.

            민우가 낸들 어디 살 일 안 하고 죽을 연굴 하느냐고 웃으면 아내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인제 남의 일 다 아랑곳할 것 없이 집안 일에만 고스란히 착념하라는 거다. 그리고 끼니마다 막 잠을 자고 난 누에처럼 밥을 처조기는 아이들을 보며 알아들으란 듯이,

            "글쎄 저애들 먹는 것만 좀 보우."

            하고 식성 좋은 아내는 제김에 침을 삼키며 흐뭇한 듯이 이번은 혼자말로 비젓이 발을 단다.

            "참 좀좀이 벌어 가지구는 안 되겠다."

            그러다가 낭중은 민우더러 글까지 쓰지 말라는 거다. 글 없는 사람은 글이 필요할 때면 아무 데 가서도 돈 안 주고 얻어 오지만서도 곁집에 도끼 빌러 가면 있구도 없답디다, 하는 아내는 사실 민우가 그리로 가 있은 한 사 년 동안에 글보다 장작 팰 도끼가 더 필요하다는 걸 육신으로서 체험한 것이다. 민우도 그만 것은 듣지 않아도 잘 안다.

            그래서 민우는 거기는 별로 할 말이 없고 또 애써 그렇지 않다고 타이르기도 싫어서 그런대로 잠자코 있다가 그 후 한번 아내가 맏놈이 인제 소학 졸업도 오래지 않았으니 중학교에 넣어야겠다, 재산증명을 맡을 수 없으니 누구 일가친척 중에서 돈냥 있는 사람을 미리 보호자로 당부해 두라는 말을 할 때, 왜 그전에는 글보다 도끼가 낫다고 했는데, 나은 걸 주지 않고 못한 걸 주자느냐고 웃으니까

            아내는 글도 시속을 잘 맞춰서 쓰면 팔모야광주보다는 낫다는 거다. 그리고 실례로 왜 내지 신문을 보면 무슨 국민가요 한 수에 몇백 원 현상이 붙어 있고 무슨 시국 영화소설이니 논문이니 하는 글 한 편에 몇천 원 현상이 붙었으니 재주가 없어 그렇지 재주만 있으면 그게 다 제 주머니 돈이 아니겠느냐는 거다.

            그러니 아내의 말을 따져 보면 민우는 결국 글재주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민우라는 위인이 무슨 장사치가 되겠느냐 하면 노상 그렇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벼슬아치는 더욱 될 수 없고 보니까 결국 어디 허름한 취직이라도 하라는 말이 된다.

            신이 나게 버쩍 떠들어 봤댔자 그저 제 손해고 미운 놈을 밉다고 했댔자 성나서 바위차기요 하늘을 우러러 침 뱉는 격이다. 속담에 미운 놈 떡 한짝 더 주랬다고 아니꼬운 꼴을 당하더라도 더 좋게 해주라고 어디로 나갈 때마다 아내는 신신당부다.

            아내는 본시 성미가 괄괄하고 왈패이나 애당초 켸가 안 될 일은 맘으로부터 항복하고 들지만, 민우는 그 반대로 약한 성격이면서도 제 맘에 못마땅하다고 생각는 사람이면 한때 그 서슬에 눌리고 무섬을 타면서도 한 대목 늦어만 지면 속으로라도 욕하고 미워해야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아내는 요샛 세상이란 그저 싫거니 좋거니 덮어놓고 단냥끔으로 청탁을 가리지 않고 두덮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민우는 실지에 있어서 아내의 말대로 그저 그렇게 벙어리 삼 년, 장님 삼 년 격으로 비위 상하는 일이라도 그런대로 보아 가고, 때로는 속에 없이 남 좋다는 대로 좋다, 옳다 하고 꾸벅꾸벅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아니꼬운 꼴,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속으로 이따금 혼자 용굴대를 부려 보고, 하다못해 남 안 보는 그늘에 가서 침이라도 탁 뱉어 줘야 맘의 한구석이 좀 들린다.

            그러자니까 자연 아내와는 더욱 위치가 맞지 않을 수밖에… 그래서 민우는 이따금 속으로 '약자!'라고도 불러 보고 심하면 '소갈머리없는 것' 하고 기껏 업신여기기도 해본다.

            그러나 아내는 또 아내대로 남편이 아주 하치않게 보이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재주도 없는 주제에, 아니 그보다 사람 모인 데 가선 변변히 말 한마디 못 하는 화상이 이불 속에서나 활개를 치면 무슨 소용이람, 똥 찌른 꼬쟁이 따위가 하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지만 겉으로는 아직 그까지 바닥을 들지는 못한다.

            "당신은 마치 갑은 물 같소."

            아내의 소견으로는 남편의 성미는 마치 충충 갑은 오랜 늪물처럼 만날 그대로만 있어서 언제 보든지 전장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