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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 어머니 말마따나 정말 외입두 좀 해야겠습디다. 그도 노비상 너무 안 하니까 어떤 때는 구찮어 죽겠습디다. 나만 가지고 못살게 구니까… 글쎄 술잔이나 자시고 들어오면 귀를 다 깨물어 준달밖에."
수득이 어미 남편 자랑은 점점 더 진경으로 들어간다. 워낙 입심 좋고 육담 잘하고 중구메(뱀장어의 일종)같이 징그러운 아낙네가 남보다 내외간 정분 좋은 근경거리기가 천하일수다.
"그저 그도 저도 말고 농사꾼이 제일이겠습디다. 촌사람이 덥덥하고 진정이고… 반질벌게 출입깨나 합네 하는 사내치고는 외도 안 하는 사내가 어디 있겠소. 아따 글쎄 사내들 혼 빼먹으랴는 갈보 칠보가 올빼미 눈처럼 노리고 있는데 반반한 사내치구 안 걸리는 장수가 있소. 열 번 찍어 안 드는 나무가 없다구."
남편 때문에 만날 속을 썩이는 덕근이 아내가 진심으로 세벌 상투 촌보리 동지를 데리고 가난하나마 비둘기처럼 구구구하고 살아 보고 싶은 토심으로 한 말인데 수득이 어미 귀에는 그 말이 제 남편 치는 언사로 들렸다.
그저 촌사람이 좋다는 것부터 위정 엇가는 말인데다가 사내 잘나면 외입 안 하고 배길 수 없다 한즉 외입 못 하는 내 남편은 무슨 얼간이나 사람사촌으로 치자는 심보가 아닌가… 수득 어미는 이렇게 생각하고 못내 비위가 상한다.
"석 냥짜리 말 이두 들어보지 말라구 흙내 나는 촌 사내 좋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래도 사내랍시고 출입도 제법 하고 인물도 깨끗하고 지식도 상당하면서 외입 안 하고 아내 하정 잘 알고 해야지… 아닌게아니라 사내 신사가 돌부처 아닌 담에야 계집들 꼬임 안 받을 사람 어디 있겠소만 그래도 거게 안 넘어가는 사람이라야 가위 진짜지요. 좋아하자는 여자가 없어서 외도 못 하는 거야, 못 하는 거지 어디 안 하는 건가, 그리게 우리 쥔 말이 우습지. 이제 늙어서 여자들이 본숭만숭할 때쯤 해서 한번 손을 써본다구."
수득이 어미 남편 자랑도 인제 종장인 줄 알았는데 또 발이 달린다.
"그리구 또 여자들이 지지리 따르는 까닭은 꼭 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맘이 내키다가도 그만 쑥 들어가 버린다는구려. 돈도 명색도 없이 돼서도 그렇게 따르는가 보구싶다구. 글쎄 날더러 말이, 임자 내 돈 없으면 설마 죽두락 따라 살겠소. 그러니 조강지처가 그럴 바에야 장삼이사 놀어먹는 계집을 어떻게 믿는단 말이냐구."
이 여인들의 세계는 완전히 남편의 품행 여하로 어둡게도 밝게도 되는 것이다. 또 그들의 세계의 전부요, 그러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곧 세계의 문제요 또 그러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한량없이 심각하고 너르고 끝날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밤도 남편 자랑이나 험담이 다 끝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계집질 좋아하는 사내는 그저 한번씩 톡톡히 큰집 구경을 시켜야지. 그래야 버릇이 떨어진다니까."
민우의 아내가 이렇게 운을 떼자 모두 참 그렇다는 듯이 맞장구판이 벌어진다. 누구는 그리로 다녀오자마자 곧 취직해서 인제는 돈을 모으고, 누구는 책사를 해서, 누구는 토지 거간을 해서, 또 누구는 부자 과부를 얻어서 전장을 거느리고 아들 딸 낳고 깨고소하게 산다는 등, 어떤 사람은 지위 있는 관리들과 상종하고 무슨 대표로 동경까지 갔다 왔는데 누구만은 아직도 징역살이가 부족해서 길이 좀 덜 들어 궁을 못 벗은 것이라는 등 이야기가 한창이다.
***
민우가 맘 가운데 저울을 들고 정주에 모인 아낙네들의 머리를 달아보기 시작한 지 이미 이윽하되 저울추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일반이다. 그는 사막과 같이 텅 빈 공허감(空虛感)을 느끼는 한편, 사람의 지혜를 진창으로 반죽해 주려는 무서운 우치(愚痴)의 세계를 또한 본다. 그것은 지옥을 보는 것보다 더 싫고 미운 일이다.
아내는 동리 아낙네들을 보내자마자 쪽대문을 절컥 건 다음 잠시 뒷간에 들렀다가 우두두 떠는 시늉을 하며 웃방으로 들어왔다.
"여보오."
아내의 목소리는 사못 가늘다.
그러나 민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해 본다.
"여, 여보."
아내의 목소리는 더 가늘고 얀삽해진다. 그러나 약간 떨린다. 아내는 지금 제 목소리에 일종 매력을 느끼고 또 간드러지거니 그렇게 생각하렷다 하고 궁리해 보니 민우는 까닭 없이 이마에 핏줄이 선다.
"여보오, 일어나요… 아이, 몸이 아주 반쪽이네, 어떻게 말랐는지."
아내는 민우의 몸을 매만지며 끔찍한 듯이 이런 말을 되풀이한다. 민우의 몸이 여윈 것을 오늘 첨 안 배 아니로되, 늘 하는 버릇으로 아내는, 이 몸이 언제 그전처럼 성해질까, 음식물이 나쁘니까 뼈만 남을 수밖에… 나나 바꿔서 그 고생했더면… 이런 혀 아랫소리를 되씹으면서 민우를 흔들어 깨운다. 그러며 속으로는 민우가 "약하긴 왜 약해. 이래봬도 남만치 악세다네"하고 손목을 꽉 쥐어 주었으면 싶었다.
아내의 말과 손이 좀 즘즛해진 때에 민우는 우뚝 일어났다. 밖에 나가서 오줌을 누고 들어오니 아내는 치마를 벗고 단속곳 바람으로 자리를 펴고 있다.
"방이 추어서… 남들은 한 달에 이십 원 어치씩 불을 땐다는데 우리는 그 반에 반도 널락말락하니…."
아내는 또 혼자말로 중얼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