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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비켜. 거미장을 지져 먹었는지 왜 어름어름하고 있어."
"아이규, 찾아보구려. 그놈의 새끼들이 어디다가 처박았는지 알길 누가 알어."
아내도 대뜸 고들머리까지 약이 오른 상이다. 또 눈물이 나오나 하고 흘끔 쳐다보니 그런 내색은 없다. 민우는 좀 안됐다는 생각도 해 본다.
"글쎄 다치면 인차 약새질을 해줘야지 사설이 무슨 소용이란 말요."
말은 순하게 하였지만 속으로는 고연히 또 아내에게 일종 증오심이 났다.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는데 아내는 밥상을 비스듬히 내놓고 모른척한다. 모른 척할 이 저녁일 수 없는 판국에 모른 척하자니까 화가 더 난다.
민우도 별말 없이 밥을 먹는다. 여느 날보다 성찬이다. 아내는 저래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늘 갔다 온 경과를 알려고 매우 궁금증이 나리라. 그러나 좀처럼 성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눈결에 도적해 본 것이지만 아내의 눈은 약간 붉어진 듯하다. 노염만 풀린다면 아내는 곁에 다가앉아서 제 입을 씨루며 밥 많이 먹기를 권할 것이요 목소리를 병적으로 구슬려서 애교청을 낼 것이로되 성이 나면 사람이 좀 소갈머리가 서는지 시치미를 따고 있다.
민우는 저녁을 먹고 나서 곧 자리에 누워 책을 보다가 시더더 잠이 들었다. 얼마 만에 잠이 깨니 아내는 자리에 누워서 여태 자지 않는 속이다. 맘이 편해야 잠도 자지 오늘밤은 또 자기 틀렸다. 밥 안 먹은들 누구 하나 알아줄 사람 있나 아이새끼들도 말이 자식이지 홀쩨 도리깨 아들이나 마찬가지다 - 하는 아내의 혼자 한탄이 고대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한참 동안 동정을 살피려니까 저편으로 돌아누운 아내는 이불 속에서 무엇을 부시적거리고 있다. 신문이나 무슨 잡지를 들추고 있는 것인가 하고 비슬떼려 넘겨다 본 순간, 민우는 입 속으로 혀를 갈기고 제대로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내는 이불 속에서 금년 민력(民曆)과 무슨 비결책인 듯한 것을 드비적거리고 있다. 그는 오늘 경과를 민우에게서 듣지 못하는 대신, 비결책에서 금년 신수를 찾아보는 속이다. 얼핏하면 잘 하는 버릇이다. 태세 월건, 일진을 아내는 잘 안다. 육갑 세는 것도 민우보다 훨씬 낫다. 그런데 만일 그 비결책에서 금년 신수 길하다는 것을 찾아낸다면 민우가 꼭 취직되리라 믿을 것이다.
이번에 화가 난 것은 민우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냈든지 민우는 아내의 아갸갸 하는 다급한 소리에 화닥닥 잠이 깨었다. 어인 영문은 알 수 없으나 대번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기가 칵 막히는 것을 느꼈다.
"아이규, 저걸 어쩌나."
그러며 아내는 단속곳 바람으로 정주 허릿문을 차고 나간다. 민우는 그제사 나무허청에서 닭이 꽥꽥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이놈의 쪽제비, 이놈의 쪽제비."
민우는 맨샤쓰 바람으로 우당탕 뛰어나갔다.
"거게 놔두고 가지 못하겠니, 이놈의 쪽제비."
아내는 나무허청에 가서 무슨 작대기 같은 것으로 나뭇단을 두드리며 소리소리 외친다. 닭이 쪽제비한테 물린 것이다.
"이눔, 이눔의 쪽제비 죽어 봐라."
민우도 손에 쥐는 대로 아무 것이나 가지고 닭소리 나는 데로 뛰어가서 나뭇단을 때리고 헤쳤다. 닭은 닭의 우리에서 물려 가지고 나뭇단 속에까지 끌려 내려온 것이다. 민우는 재빠르게 나뭇단을 집어 넘겼다. 그러자 닭소리가 딱 멈추고 동시에 이번은 또 아내의 짝 짜개지는 소리가 난다. 쪽제비가 닭을 내버리고 도망간 것이다.
"이놈의 쪽제비 죽어 봐라."
그리자 대문이 짝 하고 소리친다. 쪽제비를 겨눈 작대기가 대문에 헛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