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연실이의 심경은 현저히 변하였다.

연실이는 본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에게서 무슨 벼락이 또 내리지 않을까 근심도 되었지만, 어머니는 연실이의 악에 진저리가 났든지, 들어오는 것을 본체만체하였다.

“천하 맞세지 못할 년.”

그 뒤에도 연실이의 잘못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욕을 하려다가는 스스로 움츠러지곤 하는 것을 보면, 치마자락 놀음에 적지 않게 진저리가 난 모양이었다. 이전에는 끼니때에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큰방에서 먹었지만, 그 일 뒤부터는 막간(행랑)사람을 시켜서 상을 연실이의 방으로 들여보내곤 하였다.

큰방에서 어머니가 친자식들을 데리고 재미나게 지내는 모양을 보면, 당연히 연실이는 부럽기도 할 것이고 어머니 생각도 날 것이로되, 연실이는 어떻게 된 성격의 소녀인지, 그런 감상이 일어나는 일이 없었다.

단지 자기와 동갑 되는 커다란 아들을 어린애나 같이 등을 두드리고 머리를 쓸어주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두드리는 어른이나 두들기우는 아이나, 다 철부지라 보고 멸시하였다.

천하 만사에 정 가는 곳이 없고 정 붙일 사람이 없는 이 소녀는, 혼자서 자기에게 향하여 악을 부리고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학대하며 그날 그날을 보냈다. 현실에 대하여 너무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 소녀는, 이만 낫살의 소녀가 가질 만한 공상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냈다.

장차 어찌될까 하는 근심이든가, 장차 어떻게 하여야겠다는 목적 등은 전혀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 연실이가 자기의 생애의 국면을 타개하여보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진실로 단순한 기회에서였다.

그의 진명학교 때의 동창생 한 사람이 동경으로 유학을 갔다. 때는 바야흐로 '일한합병'의 직후로서, 동경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는 청소년이 급격히 느는 시절인데, 연실이와는 진명학교 때의 동창이던 최명애라는 처녀(연실이보다는 삼 년 위였다)가 동경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이 우연한 뉴스 한 개에 연실이의 마음도 적지 않게 동하였다.

'동경유학'

이 아름다운 칭호에 욕심난 것도 아니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시집갈 때까지 부득이 친정에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집에 그냥 박혀 있던 연실이었다.

결코 집이 그립다든가 다른 데 가는 것이 무서워서 가만 있은 것은 아니었다.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자기의 동창 한 사람이 여자의 몸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는 뉴스에 연실이의 마음도 적잖게 흔들렸다.

‘나도 동경 유학을 가리라.’

돈? 앞서는 것은 돈이로되 연실이에게는 돈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생모의 유물로서 금비녀와 금가락지가 합하여 석 냥중 남아가 있었다. 이백 원은 될 것이었다. 게다가 여차하는 날에는 적모(嫡母)의 금붙이도 허수로이 두었으니 도리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간단하고 편한 길이 또 있었다. 그의 적모는 지아비 몰래 돈을 놀리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들고 나고 하여 어떤 때는 사오십 원에서 수백 원, 때때로는 일 이천 원의 돈까지 집에 있을 때가 있었다.

드나드는 기간의 눈치만 잘 보면 그 기회도 놓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손댈 수만 있다면 그 돈은 지아비 몰래 놀리는 돈이니만치, 속으로 배는 앓아도 내놓고 문제삼지는 못할 것이었다. 서서히 기다리며 이런 좋은 기회를 붙들자면 수년 간의 학비를 한꺼번에 마련할 기회도 생기게 될 것이었다.

문제는 어학이었다. 당시에 있어서 일본말이라 하면, '하따라 마따라'니 '하소대시까라니' 쯤밖에는 알지 못하는 연실이었다. 이렁 저렁 '가나' 오십 음은 저절로 배워서 김연실을 'キムヨンシル'라고 쯤은 쓸 줄 알았으나, 일본 음으로는 자기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정도였다.

이런 생매기로 ‘하따라 마따라’ 하는 사람들만이 사는 동경 바닥에 들어서서 더구나 ‘하따라 마따라’로 공부를 하여야겠으니, 적어도 여기서 쉬운 말쯤은 배워 가지고 가야 할 것이었다.

무론 부모에게 알릴 일이 아니었다. 절대 비밀히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실이의 현재 입장은 비교적 자유로왔다.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요, 어머니는 치마자락 사건 이래로는 일체로 연실이와 맞서기를 피하여오는지라, 연실이가 나가건 들어오건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만한 선생과 그럴 듯한 장소만 구하면 일부러 집안에 알리기 전에는 자연히 비밀하게 일이 될 것이었다.

화류계에 동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연실이는, 선생을 구하는 데도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성공하였다.

이리하여 그가 열 다섯 살 나는 봄부터 어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선생이라는 사람은 연실이의 동무의 동무(기생)의 오라버니로서, 토지 세부 측량이 한창인 시절에 측량기사로 돌아먹던 사람이었다.

배우는 장소는 그 선생의 누이의 집 한 방이었다. 선생의 나이는 스물 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