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것이 아니라, 단지 어린 가슴이 너무 아파서 육친인 아버지라도 보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다정한 말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자위에 나타난 귀찮은 표정은, 이런 방면에 몹시도 예민한 연실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서러웠다. 하다못해 불쌍하다는 표정만이라도 왜 지어줄 줄을 모르는가?

“얘, 너 점심 먹었니? 국수 시켜다줄께 먹을래? 울지 말아. 미워서 내쫓으시겠니? 자, 국수 시켜다줄께 먹어라.”

그러나 연실이는 완강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날밤 연실이는 아버지의 작은댁에서 묵었다. 아버지는 가라고 몇 번을 고함질쳤지만, 연실이도 일어나지 않았거니와, 작은댁도 일껏 아버지를 찾아왔으니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 어머님의 노염이 삭은 뒤에 돌아가라고 말렸다.

그날 밤 연실이는 몹시 불쾌한 일을 보았다. 인생의 가장 추악한 한 면을 본 것이었다.

“곤할 텐데 일찍 자거라!”

저녁 뒤에 아버지는 이렇게 호령하여 웃목에 자리를 깔고 자게 하였다. 건넌방에는 첩 장인의 내외가 있는 것이다.

연실이는 자리에 들어갔으나 오늘 낮에 겪은 가지가지의 일이 머리에 왕래하여 좀체 잠이 들 수 없었다.

아버지는 딸을 재운 뒤에 소실에게 술상을 불렀다. 그리고 한참을 술을 대작하였다.

그 뒤부터 추악한 장면은 전개되었다. 이부자리를 펴고도 그 속엔 들지도 않고, 불도 끄지 않고, 이 벌거숭이의 중년 사나이와 젊은 애첩은 온갖 추태를 다 연출하였다.

“검동아, 아가, 무얼 주련?”

“나 보×!”

“너의 본댁으로 가려므나?”

“늙은 건 싫여.”

어느 때는 제법 점잔을 빼는 중늙은이가 어린 첩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그 꼬락서니는 정시치 못할 일이었다.

기생의 딸 가운데 동무를 많이 갖고 있고, 그 사이 삼 년간을 거의 동무들의 집에서 세월을 보낸 연실이는 성(性)에 대해서도 약간의 이해를 갖고 있는 계집애였다. 자기의 아버지와 그의 젊은 첩이 지금 노는 노릇이 무엇인지도 짐작이 넉넉히 갔다.

연실이는 이불 속에서 스스로 얼굴이 주홍빛으로 물들어 오르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낫살이나 든 것이 계집을 보면’ 운운하던 적모(嫡母)의 말은, 자기의 체험에서 나온 것인지 추측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여인에게 대해서 하는 행동은, 제삼자도 얼굴 붉히지 않고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벌써 딸이 잠든 줄 알고 하는 노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잠들고 안 들고 간에 자기의 딸을 웃목에 누이고, 이런 행동이 취하여질까? 이 천박한 꼴을 무가내하 잠들은 체하고 보고 있어야 할 연실이는, 어린 마음에도 이 세상이 저주스러웠다.

동무네 집에서 간간 볼 수 있는 바, 동무의 형 혹은 어머니 되는 기생들이 주정꾼이며 혹은 오입장이들을 상대로 하여 노는 꼴도, 아버지와 작은집이 노는 꼴에 비기건대 훨씬 점잖은 편이었다. 설사 무인고도에서 자기네끼리만 놀아난다 해도, 자기네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어찌 이다지야 흉하게 굴까?

얼굴에 모닥불을 놓는 것같이 달고 뜨거웠다. 숨을 죽이고 귀를 막았다.

이튿날 새벽 겨우 동틀녘쯤, 아버지가 소실을 품고 곤히 잠든 때에, 연실이는 몰래 그 집을 빠져나왔다. 눈물이 연해 그의 눈에서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