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姸實傳

 

김동인
 
 

[소개]

개화기와 식민지 초기 우리 사회에서 이름을 날리던 여류 명사들의 이면을 파헤친 소설이다. 1920년대에 이름을 떨치다가 나중에 모두 비참한 길을 걸었던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 3명의 유명 여성 가운데 이 작품은 탄실 김명순을 모델로 하고 있다. 김동인은 이들에 대해 '작품 활동 없는 작가들'이라는 식으로 폄하하고 있으나 이것은 지나치게 악의적인 평가라는 지적도 있다.

사실 '서양 문명의 겉물만 핥은'이라는 이 소설의 지적을 냉정하게 적용한다면 당시 조선의 지식인 가운데 이러한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에서 자유로울 인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작품이 당시 지식인들이 내건 거창한 이념과 구호 뒤에 자리잡았던 서글픈 현실을 냉정하게 그려냈다는 점은 충분히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두 24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각 장의 분량을 고려, 장을 세분화해서 올린다.


[작가 소개]

김동인(金東仁, 1900~1951) : 한국 근대문학의 성립 과정에서 문단을 주도했던 이광수 식의 계몽적 교훈주의에서 본격적으로 탈출을 시도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예술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이른바 본격 근대문학의 확립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관은 전주.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人) 춘사(春士). 평안남도 평양 출생. 일본 도쿄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創造)>를 발간했으며 <배따라기> <감자>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에 공헌하였다.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1935년부터 <왕부(王府)의 낙조(落照)> 등을 발표하고 야담사(野談社)를 설립하여 월간지 <야담(野談)>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와 함께 마약 중독에 걸리기도 했다. 6·25 때 숙환으로 서울에서 작고하였다. 평론 <춘원연구(春園硏究)>가 남아 있다. 1955년 <사상계(思想界)>에서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을 제정·시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