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입학을 하고 기숙사에 든 다음에야 연실이는 '조선 여자 유학생 친목회'에 처음 출석하여보았다. 이전에도 명애가 몇 번을 끌어보았지만, 그런 일에 전혀 흥미가 없는 연실이는 한번도 출석해보지 않았다. 이번에도 명애가 학교에서,
“오늘 친목회가 있는데 여전히 안갈래?”
하고 의향을 물을 때에,
“이젠 학교에도 들고 했으니까 가볼 테야.”
하면서 미소하였다.
“그럼 지금까지는 학생이 못되노라고 안갔었나?”
“유학생 친목회에 비(非) 학생이 무슨 염치에 가요?”
“준비 학생은 학생이 아닌가?”
“하하하하!”
이리하여 그날 저녁 사감의 허락을 받고 연실이는 처음으로 동경에 와 있는 조선 유학생들과 합석할 기회를 얻었다.
연실이까지 합계 일곱 명이었다. 이 단 일곱 명 가운데, 회장 부회장이 있고 서기가 있고 회계가 있었다. 아무 벼슬도 하지 못한 사람은 명애와 연실이와 황해도 여학생이라는 이십 살 가량 난 사람뿐이었다.
이 단 일곱 명의 친목회에서 먼저 서기의 경과보고가 있고 회계의 회계보고가 있은 뒤에, 회장의 연설이 있었다.
- 우리는 선각자외다. 조선 이천만 백성 중에 절반을 차지하는 일 천만의 여자가 모두 잠자코 현재의 노예 생활에 만족해 있을 때에, 눈을 먼저 뜬 우리들은 그들을 깨쳐주고 그들을 노예 생활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고향과 친척 친지를 등지고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는 것이외다.
여성을 자기네의 노예로 하고 있는 현대 포악한 남성의 손에서, 일 천만 여성을 구해낼 사람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남성에게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배웁시다. 그리고 힘을 기릅시다.
대략 이런 뜻의 말을 책상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정신적으로 전혀 불감증(不感症)인 시대를 벗어나서 감정, 감동 등을 막연히나마 느끼기 시작하던 연실이는, 이 말에 적지 않게 감동하였다.
자기가 동경으로 뛰쳐오고 지금 학교에까지 들어간 것은 본시는 무슨 중대한 목적이 있는 바가 아니라, 집에 있기가 싫어서 뛰쳐나온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회장의 연설을 듣고 보니, 자기의 등에도 무슨 커다란 것이 지워지는 것 같았다.
조선의 여자가 어떻게 구속되고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전에 진명학교 창립 선생도 그런 말을 하였고, 지금 또 여기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그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것이 사실일진대 그것을 구해낼 사람은 남자가 아니요 여자여야 할 것이고, 여자 중에서도 먼저 선진국에 와서 새 문화를 배운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자기는 이미 여기 와서 배우는 단 일곱 사람의 선각자의 한 사람이니, 일 천만 분의 칠이라는 - 다시 말하면 일백 오십만 명에 한 명이라 하는 귀한 존재이다. 소녀다운 감정으로 회장의 연설을 들으며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할 때, 연실이는 큰 바위에라도 깔린 듯이 가슴이 무거워오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언니, 아까 그 회장 이름이 뭐유?”
회가 끝나고 어두운 길에 나오면서 연실이는 이렇게 명애에게 물었다.
“송안나. 왜?”
“이름두 야릇두 해라. 어느 학교에 다니우?”
“사범학교에.”
“어디 사람이구?”
“아마 강서(江西)인가, 함종(咸從)인가, 그 근처 사람이지.”
“몇 살이나 났우?”
“왜 이리 끈끈히 묻나? 동성연애할려나 봐.”
연애라는 말은 이젠 짐작은 가지만, 연애 위에 무슨 말이 더 붙었으므로 뜻을 똑똑히 못 알아들은 연실이는 눈치로 보아 조롱 받은 것 같아서,
“언니두…”
한 뒤에 말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그날 저녁 들은 '선각자'라 하는 말 한 마디는 이 처녀의 마음에 꽤 단단히 들어박혔다.
- 선각자가 되리라. 우리 조선 여성을 노예의 처지에서 건져내리라. 구습에 젖어서 아직 눈뜨지 못하는 조선 여성을 새로운 세계로 끌어내리라.
이런 새로운 감정으로 그는 '감동 때문에 잠 못드는 밤'을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김연실전 - 7. 막연하나마 감정과 감동을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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