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연실이가 학교에서 기숙사로 돌아와서 책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에, 그 방장(房長)으로 있는 사 학년 생 도가와(戶川)라는 처녀가 연실이의 곁으로 와서 앉았다.

“긴상!”

“네?”

“조선말 퍽 어렵지요?”

“글쎄요, 우린 모르겠어요.”

“영어는?”

“재미있지만 어려워요.”

“외국어란 어려운 것이야. 참 긴상.”

도가와는 좀 어려운 듯이 미소하며 연실이를 보았다.

“아까 하나이 선생 - 긴상 담임선생 말씀이야요. 하나이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긴상 일본어가 아직 숙련되지 못했다구, 나더러 틈틈이 좀 함께 이야기라도 하라시더군요.”

연실이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다. 스스로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잘 부탁합니다.”

연실이는 승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만에, 아니에요. 내가 무슨… 긴상 책을 많이 보세요. 책을 보면 저절로 어학력이 늘어요. 내 책을 빌려드릴께 책으로 어학을 연습하세요.”

“책이오? 무슨 책?”

도가와는 미리 준비하였던 모양인 책을 연실이에게 한권 주었다. 등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라 씌여 있었다.

“재미있어요. 재미있는 바람에 읽노라면 어학력도 늘고, 일석이조라는 게 이런 거겠지요.”

도가와는 깔깔 웃었다.

연실이는 즉시로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 교과서 이외에 평생 처음으로 독서를 하여보는 연실이는, 처음 얼마는 몹시도 난삽하여 책을 접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일껏 자기에게 책을 빌려준 방장의 면도 있고 하여, 세 페이지, 네 페이지, 억지로 내려읽고 있었다.

저녁끼니 시간이 되었다. 방장에게 독촉 받아 식당에 내려간 연실이는, 자기의 손에 아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들려 있고, 식당에 앉아서도 그냥 눈을 책에 붙이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오히려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덧 그는 책에 열중이 되었던 것이다.

무론 모를 대목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모를 곳은 모를 대로 그냥 내려 읽노라면 의미는 통하는 것이었다.

밤에 불을 끄는 시간까지 연실이는 그 책만 보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에 유난히도 일찌기 깬 연실이는, 푸르둥한 새벽빛에 눈을 비비면서 소설책을 다시 폈다.

아침에 깬 방장이 이 모양을 보고 미소하였다.

“어때요? 재미있어요?”

방장이 이렇게 물을 때에, 연실이는 눈을 책에서 떼지 않고,

“지독히.”

하며 미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