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곳은 없어요?”
“있지만 뜻은 통하겠어요.”
“다 읽어요. 다 읽으면 이번은 더 재미나는 책을 빌려드릴께. 어학 연습에는 무엇보다도 다독(多讀)이 좋아요.”
학교에서 책을 끼고 가서 틈틈이 숨어서 읽고 저녁에 읽고 이튿날, 이리하여 독서의 속력(速力)이 그다지 빠르지 못한 그로도 이튿날 저녁때에는 끝까지 다 읽었다.
다 읽은 책을 베개 아래 넣고 자리에 든 연실이는, 가슴을 무득히 누르는 알지 못할 감정 때문에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것은 무슨 감정인지 연실이는 알지 못하였다. 이런 감정과 감동을 평생에 처음 겪는 연실이는 이불 속에서 홀로이 해적였다.
이틀 동안의 수면 부족 때문에 무거운 머리로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 본 책을 방장에게 돌려주고, 연실이는 그런 재미있는 책을 또 한 권 빌려달라고 간청하였다.
“자, 이걸 보세요.”
하면서 방장이 연실이에게 준 책은 꽤 두툼한 책이었다. <에일윈 - 윗츠 던톤>이라 하였다.
그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오전만 공부하고 오후부터는 연실이는 책에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월, 화, 수, 목, 금, 만 일주일간을 잠시도 정신은 이 책에서 떼지 못하고 지냈다.
화요일, 그 소설의 주인공인 에일윈이 사랑하는 처녀 윈니프렛의 종적을 잃어버리고 스노우돈의 산과 골짜기를 헤매다가 윈니의 냄새만 걸핏 감각한 대목에서 학교 시간이 되어 그만 책을 덮었던 연실이는, 윈니의 생각에 안절부절 공부도 어떻게 하였는지 모르고 지냈다.
“윈니상, 어때요?”
책을 다 보고 방장 도가와에게 돌려주매, 도가와는 또 미소하며 물었다. 그러나 연실이는 한참을 먹먹히 있다가야 대답을 하였다.
“도가와상, 꿈같아요.”
“좋지요?”
“좋은지 어떤지, 얼떨해요.”
“이 소설을 지은 윗츠 던톤이라는 사람은 이 소설 단 한편으로 영국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우. 나도 이 소설을 읽은 뒤 한달 반이나 꿈같이 얼떨하니 지냈어요.”
“그게 웬일일까?”
“그게 예술의 힘이에요. 예술의 힘이 사람의 혼을 울려놓은 때문이에요.”
“예술?”
듣던 바 처음이었다.
“네, 예술. 예술 가운데는 음악 미술 문학 등이 있는데, 문학에도 또 시며 희곡이며 소설이 있어요. 다른 학문들은 모두 실제, 실용상 쓸데 있는 것이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사람의 혼과 직접 교섭이 있는 존귀한 학문이에요.”
문학 소녀라는 칭호를 듣는 도가와는 여러가지의 말로 예술, 문학의 자랑을 연실이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연실이로서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다만 몹시도 귀하고 중한 학문이 예술이라는 뜻만 막연히 깨달았다. 그리고 단지 책을 읽기 때문에 자기가 이만치 감동되고 취한 것을 보면, 예사 보통의 학문이 아니라 생각되었다.
“긴상, 조선에 문학이 있어요?”
도가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물었다.
김연실전 - 8-2. 예술의 힘이 사람의 혼을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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