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이를 잃은 것은 아깝지도 않았고, 헤어지게 된 것이 서럽지도 않았다. 냉정히 생각하자면 이젠 냄새나던 처지라 도리어 시원한 편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가볍게 마치 헌신 버리듯 버리운 것이 분하였다. 자기가 헌신같이 버림받았으면, 자기는 유봉이를 걸레같이 버렸다 생각하였다.
이튿날 호텔에서 나왔다. 새로 적당한 주인을 잡기까지 며칠을 자기의 주인 집에 있으라는 J의 권고를 따라서 짐을 임시 J의 하숙에 부렸다.
정조관념에는 전연 불감증인 연실이는 J와의 동서(同棲) 생활도 그저 그렇고 그럴 것이라고 꺼려지지도 않는 대신 달갑지도 않았다. 다만 문학적 생활(연애를 하고 달을 찬송하고 별을 노래하며 꽃을 사랑하는)에서 꽤 멀리 떨어진 것이 매우 섭섭하였다. 다시 그 생활에 들어갈 기회를 포착하기에 마음썼다. J는 문학미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J에게서, 연실이는 김유봉이 최명애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전말을 들었다. 그것은 연실이와 유봉이가 갈라지게 된 전말보다도 더 싱거웠다. 유봉이와 명애가 남의 눈을 피하기 시작한 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였다.
그러다가 최근 어떤 날 명애의 남편 고 교수가 학교에서 교수를 끝내고 허덕허덕 집으로 돌아와 보니까 아내가 없었다. 그 아내는 항용 나다니는 아내라 심상히 여겨서 찾아보지도 않았더니, 그날 밤이 깊어도, 밤이 새고 새날이 와도 또 다른 새날이 와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사흘 뒤에 사진 한 장이 우편으로 배달된 뿐인데,
그것은 김유봉이와 최명애가 내외와 같은 태도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것은 마치 연실이가 수년 전 아버지에게서 혼담 편지를 받고 회답 대신으로 연실 자기와 남학생과 갓난애의 세 사람이 찍힌 사진을 보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무언의 이혼장이었다.
본시 신경이 둔한 위에, 그때 마침 어떤 신문 여기자와 밀접히 지내던 고 교수는, 지금 받은 사진을 찢어버리고 그 대신 자기와 여자 기자가 찍힌 다른 사진을 꺼내어 사진틀에 넣고, 사진만 아니라 안방의 주인까지도 그렇게 바꾸었다. 이것이 그 전말이었다.
김연실전 - 20. 싱거운 전말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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