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에 침침한 얼굴로 찾아오는 연실이를 명애는 놀라면서 반갑게 맞았다.

“웬일인가? 자, 건넌방으로 들어가세.”

겨우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할세마는 연실이는 진새벽에 웬일이야?”

연실이는 씩 웃었다. 적당한 대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연실이가 자기의 가슴에 품은 근심을 명애에게 하소연한 것은 점심때도 거의 되어서 명애의 남편(?)이 외출을 한 뒤였다.

“에이, 이 바보야!”

연실이의 하소연을 듣고 명애는 명랑한 웃음을 한가닥 웃은 뒤에 이렇게 내던졌다.

“상판대기 반질허구 나이두 아직 젊었겠다, 이 좋은 세상에서 돈의 걱정을 한담? 죽어 불여(不如)라. 이생(爾生) 하(何) 쓰리오?”

“그럼 어떡허우?”

“그맛 지혜도 안나니? 녀석들 가운데 그중 어수룩해보이는 녀석하구 단둘이서 있을 기회를 타서 한번 장태식(長太息)을 하는 게지. 우리 천사여, 왜 한숨을 짓는 겐가? 아아, 선생님! 인간엔 왜 이다지 고초가 많사외까? 무슨 고초외까, 우리 천사여? 말씀드릴 바가 아니외다. 꼭 말씀, 아니, 꼭, 아니, 두세 번 사양을 하다가 마지못해 한숨의 곡절을 설명하려무나. 거기 주머니를 벌리지 않는 녀석은 따귀를 갈길 겔세.”

연실이는 탄식하였다.

“그래도 염치에…”

“염치? 뒤집어씌울 땐 언제구 점잔 뽑을 땐 언젠가? 말이나 말아라. 샨노메 쟈시까 같으니!”

남의 감정을 생각지 않고 함부로 내던지는 농담에 저절로 찌푸려지려는 눈살을 감추려고 연실이는 외면을 하였다. 물론 명애에게서 무슨 해결을 얻자고 찾은 바는 아니다. 갈 곳도 없고 하도 클클해서 왔던 바였다. 왔다가 말말결에(가슴에 뭉쳤던 근심이라) 저절로 터져나온 것이었다.

놀랍게 짧은 가을 해가 서편 하늘에서 춤을 출 때에 연실이는 명애의 집을 나섰다.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나서기는 하였지만 갈 곳이 없었다. 앞이 딱하였다. 다른 단련은 퍽으나 경험했지만 빚 단련은 처음 겪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갚으마 한 것을 오늘도 빈손으로 들어갔다가 주인 노파에게 채근 받으면 무어라 대답할까? 황혼에서 어둠으로, 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아래서 연실이는 지향없이 헤매고 있었다. 또 누구의 집을 찾아가서 이 밤을 보낼까? 혹은 눈 딱 감고 집으로 돌아갈까? 이렇게 헤매다가 저편 길 모퉁이에 전당국 간판이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럼을 무릅쓰고 집으로 들어갔다.

팔목에 찼던 시계를 이십 원에 잡혀서 비로소 길게 숨을 내쉬고 주인집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