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는데 그로부터 나흘 뒤 오정쯤, J라는 사람이 호텔로 찾아왔다. J는 어느 민간신문 기자였다. 성격은 좋게 말하자면 호협 남자요 나쁘게 말하자면 뻔뻔한 사람이었다. 현재는 연실이가 유봉이와 남이 아니고 유봉이는 시골 간 줄 알면서 찾아왔으니 미루어 알 것이다.
“김 소사(金召史)!”
칭호부터 괴상하였다. 연실이는 영문 몰라 번번히 쳐다보았다. J는 모자도 쓴 채로 의자 걸상 다 버리고 침대에 덜컥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편안한 듯이 두어 번 들석들석 춤을 추어보고는 지팡이로 침대보를 두드리며,
“사숙(私宿)이구 여관이구 어서 하나 정해야지 않소?”
하며 머리를 기울이고 연실이를 들여다본다.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 호텔은 하루 방세 사원, 식사까지 하면 칠팔 원 이상이 걸릴 테니 어떻게 방침을 세워야지 않겠소?”
여전히 모를 말. J는 비로소 유쾌한 듯이 한번 크게 웃었다.
“여보 긴상, 시바이는 그만두고 내 앙천대소할 만한 뉴스를 하나 긴상께 알리지. 다른 게 아니라, 유봉이가 시골에 갔다는 건 일장 시바이구, 녀석 ××동에다가 오부득하니 신접살림 꾸려놓고 소꼽질 살림에 정신 빠졌답니다.”
“재미나겠군요.”
연실이는 가볍게 대답하였다. 대포를 잘 놓는 J라 거짓말로 알았다.
연실이가 믿건 말건, J는 여전히 연실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제 말을 계속하였다.
“게다가 이 로맨스 유출유기(愈出愈奇)해서 미금앙천대소(未禁仰天大笑)니 즉 소꼽살림의 마담이 누군가 하면 전(前) Y전문학교 문과 교수 고창범 씨의 영부인 최명애 여사. 어떻습니까?”
“참 재미나는걸요. 신문기사는커녕 소설 재료도 될걸요.”
“자, 산보나 나갑시다. 구데기 나겠소이다.”
“오늘은…”
“머리가 아프지요? 두통에는 산보가 제일 약입니다. 자, 어서…”
연실이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리가 아파 못나가겠는걸요.”
“그렇지, 종일 누워 있으니 다리도 저리리다. 운동을 해서 펴야지.”
서두는 바람에 연실이는 하릴없이 따라나섰다.
J는 연실이를 끌고 걸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적잖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어떤 골목 앞에까지 이르러서 J는 걸음을 느리게 하며 연실이를 돌아보고,
“자, 이 도적놈들 보세요.”
하며 지팡이를 들어서 그 앞집의 문패를 가리켰다.
연실이는 지팡이 끝을 따라 눈을 들었다. 새로 이사온 집인 양하여 거기는 문패 달렸던 자리만 희게 남고 그 대신 명함이 한 장 붙어 있었다. 보니, '金流鳳(김유봉)'이었다.
연실이는 거기서 넘어지지도 않고 비틀거리지도 않고, 호텔까지 돌아옴에 뉘게 부축 받은 기억도 없고, 자동차나 인력거를 탄 기억도 없이 - 요컨대 평상과 조금도 다름없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돌아온 행보며 노순이며 길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에 남은 것이 없었다. J와 함께 돌아왔는데 그 기억조차 없었다.
김연실전 - 19-3. 앙천대소할 만한 뉴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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