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실이가 명애의 집에 기류하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연실이와 명애는 대판 싸움을 하였다.
명애는 자기의 남편 되는 고창범이가 세상에 드문 호인인 것을 다행히 여기고 온갖 행동을 자유로 하였다. 그 소위 '온갖 행동'이라는 데는 연애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창범이도 짐작은 한다. 그러나 성격이 덜 났느니 만치 호인인 그는, 아내와 싸우기가 싫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모른 체하는 모양이었다.
명애의 상대 남자라는 것은 소위 살롱의 문학 청년도 있고, 남편의 친구도 있고 하여 대중이 없었다. 어느 일요일날, 이날도 아마 명애는 그 애인 중의 누구를 만나러 나간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 놀러나가려면 연실이를 두고 나갈 까닭이 없었다.
집에는 창범이와 연실이와 하인밖에 없었다.
창범이와 연실이는 같은 방에서, 창범이는 신문을 연실이는 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 소설에는 마침 어떤 여자(주인공)가 이전 학생 시대에 자기와 관계 있던 남자의 아내(친구끼리다)에게 놀러간다. 아내는 지금 찾아온 동무와 제 남편이 과거에 그런 일이 있은 줄은 모른다. 아내는 동무를 위하여 과일이라도 사러 가게에 나간다.
과거에 관계 있던 남녀가 단둘이 남는다. 여자가 눈을 들어 사내를 본다. 사내도 마주본다. 서로 싱그레 웃는다. 서로 손을 내민다. 서로 쓸어안는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이것을 읽다가 연실이는 뜻하지 않고 고창범이를 건너다보았다. 그러매 고창범이도 연실이가 자기를 보는 기수에 신문을 내리며 마주보았다.
뜻하지 않고 서로 싱그레 웃었다. 수년 전에 마주 서로 보고 싱그레 웃던 일이 생각났다. 연실이가 말을 던져보았다.
“재미가 꿀 같죠?”
“세상 살기가 귀찮아집니다.”
“꽃 같은 부인에…”
“좀 가까이 와서 옛날과 같이 이야기나 해봅시다.”
고창범이는 손을 길게 뻗쳤다.
“명애한테 큰일나게…”
“이건 왜 이래!”
창범은 연실이의 옷깃을 잡았다. 옷깃에서 팔목으로 팔목에서 어깨로·서로 나란히하고 그 뒤에는 어깨를 붙안고 뺨을 비비고 꼴이 차차 우습게 되어갈 때에 문이 홱 열렸다.
깜짝 놀라서 남녀가 떨어져 앉을 때에 문에 나타난 사람은 이 집의 여왕 명애였다.
명애에게는 너무도 의외인 모양이었다. 잠깐 멍하니 섰다. 서로 떨어진 남녀도 무슨 할말도 없어서 우두머니 앉아 있었다.
드디어 명애에게서 노염이 폭발되었다.
“흥!”
이것이 첫 호령이었다. 다음 순간 화닥닥 뛰쳐들었다. 첫 발길로 제 남편을 걷어찼다. 다음 발길로 연실이를 차려 하였다. 연실이가 몸만 비키지 않았더면 무론 채였을 것이다.
연실이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켰다. 그 때문에 허공을 찬 명애는 탁 엉덩이를 주저앉았다.
“이놈의 계집애, 손질까지 하는구나!”
악이었다. 달려들어 연실이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여기서 두 여인은 한참을 서로 악담을 퍼부어가면서 머리채를 맞잡고 싸웠다. 명애의 남편은 어디로 언제 피하였는지 없어져버렸다.
이 집 하인이 들어와서 간신히 떼어놓을 때까지, 두 여인은 서로 옷을 찢으며 찢기우며 머리를 뽑히우며 코피를 쏟으며 가장집물을 부수며 격투를 계속하였다.
하인의 중재로 겨우 떨어진 뒤에 연실이는 도둑년이라 부르짖으며 명애는 화냥년이라 부르짖으며, 각각 하인에게 끌리어 딴 방으로 갈렸다.
제 방으로 돌아온 연실이는 즉시로 얼굴을 닦고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갈아입고 행장을 수습하여 가지고 명애의 집을 나왔다.
인력거에 몸과 짐을 실은 뒤에 연실이가 인력거꾼에게 가리킨 방향은 패밀리 호텔이었다.
이 패밀리 호텔에는 김유봉(金流鳳)이가 묵어 있었다.
김연실전 - 16. 두 여인의 격투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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