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이 일년간 쌓이고 쌓인 여러가지의 원인이 합하여서 연실이와 김유봉과 갈라지게 된 것이다.

공동생활을 시작하여 석 달 넉 달은 그야말로 꿀과 같고 꿈과 같은 살림이 계속되었다. 유봉은 문학 청년다운 온갖 재롱과 아첨과 애무를 연실이에게 퍼부었다. 영화에서 본 바, 또는 소설에서 읽은 바, 온갖 서양식 연애 재롱과 연애 방법을 다하여 연실이를 애무하였다.

거기 대하여 연실이도 또한 자기의 아는 바 온갖 서양식 연애 기술을 다하여 유봉이에게 갚았다. 외출은 반드시 둘이서 끼고야 하였지만, 어떻게 유봉이 혼자서 나가게 되면 연실이는 들창문을 열고 천백번의 키스를 유봉에게 던졌다.

돌아올 때는 맞받아나가서 가슴에 매달려 함부로 얼굴을 비벼대었다. 서양의 걸음걸이와 서양식 몸가짐과 서양식 표정 태도 등을 배우느라고 주의도 많이 하고 애도 퍽 썼다.

“아아, 김 선생님, 보담 더 행복되게, 보담 더 아름답게, 우리들의 라이프를 전개시키기 위해서 베스트를 다합시다요!”

“그렇습니다 연실씨! 현재에도 우리는 행복스럽거니와 더 큰 행복을 향해서 매진합시다.”

“아아, 참 저는 김 선생님을 만난 것이 사막에 헤매던 사람이 오아시스를 만난 것 이상으로 환희의 절정이에요. 암흑에서 길을 잃고 갈 바를 모르던 사람에게 천(天)의 일각(一角)에서 한줄기 성광(聖光)이 비쳐서 길을 인도하는 것과 같아서 가슴이 환해집니다.”

“오오, 하늘에서 명멸하는 무수한 별이여! 그대 어찌타 꺼질 줄을 모르느뇨!”

“아아, 김 선생님!”

달도 없고 불도 없는 캄캄한 노대(露臺)에서 주고 받는 속살거림은 과시 서양식이고, 서양식인지라 연애다운 연애이고, 연애다운 연애인지라 문학미(味)가 충일된 것이었다.

이런 생활이 두 달 석 달 넉 달이 계속되었다. 그리고는 차차 주름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유봉이에게 있어서는 연실이의 무학(無學)과 무식이 차차 눈에 뜨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연애에 달뜬 동안은 그런 흠들이 모두 눈에 안 뜨이거나, 혹은 뜨일지라도 흠으로 보이지 않거나 했던 것이, 차차 날짜가 지나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는, 이제는 현저히 보인 모양이었다.

평범한 이야기 하나도 변변히 알아듣지 못하여 동문서답이 태반이어니와, 연실이가 가장 문학적 회화를 하노라고 많은 형용사와 조사와 감탄사를 끼어가지고 아름다운 청과 곡조로 하소연하는 미언려구(美言麗句)가 또한 본뜻과는 적지 않게 거리가 생겨서, 여류문학가라는 것은 꿈에도 욕심내지 못할 얕은 정도의 것이었다.

연애에 취하였을 때는 눈에 안 뜨이던 이런 흠이 차차 냄새가 나면서는 나날이 더 현저하게 눈에 거슬리며, 그뿐더러, 심상히 보자면 흠 잡히지 않을 것까지도 흠으로 보이고, 수효도 늘어가는 한편 흠의 정도도 크게 보여갔다.

처음에는 모르게 지냈고, 그 뒤에는 실수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 그 뒤는 간간 고쳐주었고, 또 그 뒤는 핀잔을 주던 것이, 마지막에는 흠 잡히지 않을 말까지라도 흠을 잡아 핀잔을 주고, 무식하다 매도하고, 일부러 큰소리로 웃어주어서 망신을 시키게까지 되었다.

말하자면 유봉이는 연실이에게 이젠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흠이 눈에 뜨이고, 대수롭지 않은 흠이 아주 크게 보인 것이었다.

유봉이의 심경이 이렇게 변함과 같은 보조로 연실이의 심경도 변하였다.

유봉이의 태도가 차차 불학무식한 사람과 같아 갔다. 처음에는 아주 귀공자다이 단아하고 우미하던 유봉이가 날이 갈수록 차차 조야하고 횡포하여갔다.

처음 여왕을 보호하던 기사와 같던 태도는 차차 사라져 없어지고, 조야한 본성이 드러나면서부터는 그의 예술미까지도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연실이에게 대해서 문학을 토론하기를 차차 피하였다.

이것은 토론한댔자 연실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 말하자면 연실이의 실력이 발견된 탓도 있겠지만, 연실이가 알아들을 만한 이야기도 저희들끼리만 토론하였지, 연실이에게 향하는 일이 줄어갔다.

물론 문학적 연애의 가지가지의 재롱도 점점 적어지고, 시(詩)도 없어지고, 달도 몰라가고, 별도 몰라가고, 꽃도 몰라가고, 연실이가 '문학적 감동'으로 알고 있는 기분이며 정서는 물에 씻기우는 듯이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