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이가 연실이에게 요구하는 성행위(연실이는 성행위와 연애를 같은 물건으로 안다)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우아하고 시(詩)적이요 문학적인 것이 아니고, 더럽고 추잡하고 무식한 - 그 옛날 어떤 저녁 연실이의 아버지가 애첩과 지내던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연실이가 맨 처음 만난 측량쟁이(연실이에게 어학을 가르친)로부터, 김유봉의 직전(直前)까지, 열 손가락을 꼽고도 남는 이성(異性) 가운데서 유봉이와 같이 추잡한 성행위를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야기는커녕 생각만 하여도 얼굴에 모닥불을 놓는 것 같은 느낌을 면할 수 없는 행위를 실천하고 요구하니, 이 너무도 비문학적(非文學的)이요 비시적(非詩的)인 김유봉이가 선각자 연실이의 마음의 애인이 될 수가 물론 없었다. 그 위에 더욱 더 그 무지한 본성을 폭로하노라고, 레이디에게 대하여 완력 행위까지 하기를 사양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비문학적인 김유봉이에게 대하여 연실이가 차차 소원하게 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석 달 넉 달이 지나고 반년 열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서로 기괴한 사이가 되어서, 극도의 증오와 극도의 배척심을 품고 서로 대하게 되었다.

물론 한 자리에서 잔다.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 그러나 한번의 미소도 없이 한 가닥의 '자연 찬송사'도 없이 한마디의 시도 없이, 제각기 제 감정 제 꿈으로 날을 보낸다. 그리고 이튿날도 또 같은 프로그램이 반복되는 뿐이었다.

문학으로 서로 얽혀지고 사랑으로 얽혀졌던 그들에게서 문학에 수준의 균형을 잃고 사랑에 공명점을 잃었으니(애당초부터 사랑이란 것은 존재치도 않았지만) 웃음이 있을 까닭이 없고 기쁨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동부인하고 나다니는 일도 없어졌다. 유봉이의 친구들이 모여서 연실이를 중심에 두고 문학론들을 지껄이던 일도 지금은 전과 달라져서, 연실이는 따로 제쳐놓고 저희들끼리만 지껄였다. 그렇지 않으면 연실이만 호텔에 혼자 남겨두고 저희끼리 밖으로 나갔다.

연실이가 명애의 집에서 뛰쳐나와 유봉이와 함께 패밀리 호텔에 기류한 처음 한동안은 명애의 살롱에 모이던 그룹이 패밀리 호텔을 집합소로 삼고 거기서들 놀았다. 그러던 것도 연실이와 유봉이의 사이가 식어갈 때는 차차 다른 곳으로 모였다.

연실이는 차차 문학과 떨어졌다. 선구자라는 긍지에도 꽤 흔들림이 생겼다. 문학을 호흡하고 문학을 음식하려는 것이 연실이의 이상이요 희망이어늘 결과는 그 반대였다.

패밀리 호텔에서 이런 대중잡지 못할 생활의 일년을 보낸 뒤에 그 생활의 파국이 이르렀다.
파국이랬자 그 이론 방법은 너무도 싱거웠다. 다툼, 하다못해 언쟁 한마디도 없이, 사실로는 연실이는 그것이 유봉과는 이별인 줄도 모르고 이 국면을 맞은 것이었다.

어떤 날 유봉은 갑자기 고향 평양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하였다.

“가면 언제쯤 와요?”

연실이는 이렇게 물었다. 이젠 존경사도 서로 약해버리는 처지였다.

“글쎄, 한 주일 걸릴가, 한 반삭 걸릴가? 혹은 반년이 될지도 모르구… 혼자 있기 무서운가? 무서우면 장정이나 하나 시침(侍寢)시키지.”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용채로 쓰라고 몇백 환 집어주고 짐은 말끔히 꾸려가지고 나갔다.

“곧 다녀오면 무슨 짐이 그리 많소?”

하도 시시골골이 제 물건은 다 꺼내어 싸므로 이렇게 연실이가 물으매, 그는,

“올 때 도로 가져오면 되지.”

하고는 하나도 남김없이 싸 가지고 떠났다.

연실이는 거기 무슨 의심을 두지 않았다. 며칠을 다녀오려는지 그동안 오래간만에 좀 홀로 지내는 자유를 향락하고 싶었다. 정거장에나 나가봐야 할 것이나, 유봉이가 한사코 말리므로 그것 좋다 하고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