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실이가 동경으로 처음 떠날 때에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훔쳐가지고 떠났던 돈은 그가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명애의 집에 기류해 있는 동안 다 썼다.

그러나 당시는 일천 구백 이십 년 전후의 호경기(好景氣) 시대라, 돈이 함부로 굴러다니던 때니 만치 금전은 전혀 문제가 안되었다. 만록총중의 일점홍으로 사천 년래의 제일 첫 사람인 신시인(新詩人)에게 생활 곤란의 문제가 생길 까닭이 없었다.

한 주일에 한번씩 내야 하는 이 호텔의 방세는 괴상한 복장의 청년들이 경쟁적으로 순서를 다투며 부담하였다. 매 끼니끼니는 이 청년 중의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씩이 내고 하였다. 일용품들도 연방 갖다바쳤다. 직접 금전으로도 바쳤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다 없어진다 할지라도 연실이의 생활은 튼튼히 보장되었다. 김유봉이가 연실이의 패트런이 되었다.

한 호텔에서 한가지의 취미를 즐기는 젊은 남녀였다. 그 사이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연실이는 연애를 동경한 지 수년, 이 패밀리 호텔에서 비로소 소설에서 읽던 연애를 사실적으로 체험하였다.

가장 유행형인 의복으로 맵시 나게 차린 김유봉과 동반하여, 혹은 교외를 산책하고 혹은 밤의 거리를 방황하며, 호텔의 창에서 갈구리 같은 달을 우러르며, 혹은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일찌기 소설에서 읽은 바와 같은 달콤한 속살거림을 서로 주고받았다.

“연실씨, 연실씨의 곁에 가까이 앉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립니다그려.”

“아이 참! 김 선생님? 우리가 왜 좀더 일찌기 만나지 못했을까요?”

“그게 참 큰 한입니다. 아아! 이 달밤에 우리 산보나 같이 나가볼까요?”

“네, 참 그러세요.”

그리고는 서로 잡았던 손에 힘을 주고 서로 뺨을 비벼대고 하였다.

싸우고 난 뒤에는 다시 명애를 만나지 않았다. 여자의 친구는 남자일 것이지 여자는 여자의 친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날 그 일에 일종의 희망을 붙였는지, 명애의 남편인 고창범은 몇 번 연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날 우연한 찬스에 다시 한번 붙안겨보기는 하였지만, 고창범 같은 남자에게는 일호의 흥미도 느낄 수 없는 연실이는 다시 창범을 만나지 않았다.

퇴폐파의 문사며 그밖 젊은이들도 차차 연실이를 김유봉의 애인으로 인식해주는 사람이 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