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뒤에 명애는 최근 삼사 년간에 졸업하고 귀국한 남학생을 한 오륙십 명 뽑아내었다. 그 가운데 세 사람은 명애하고 특별한 관계가 있던 것을 연실이도 안다. 그로 미루어서 나머지들도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어디 네가 간택을 해봐라. 누가 제일 낫겠니?”
“내가 아우? 아재 간택하는 법두 있수?”
“하하하하! 너 고창범(高昌範)이라구 알지?”
알기 뿐이랴. 연실이도 한두 번 명애 몰래 만나본 일이 있는 W대학 문과 출신의 서울 사람이었다.
“셋샤 마음에는 고창범이가 가장 드는구나.”
싱거운 사내였다. 호인(好人) 이상은 보잘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고씨가 지금 어디 있수?”
“Y전문학교 문과 교수라네.”
“부잔가?”
“저 먹을 게나 있지. 조금 덜난 편이지만…”
“그 사람 어디가 마음에 드우? 난 원 시원치 않소.”
“그렇기에 내 마음에 들지. 네나 내나 시원한 남편 아래서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안될 말이지.”
“난 귀국해서두 시집은 안 가겠수. 사내라는 건 도대체 한 달만 가까이 지내보면 벌써 부려먹으려 덤벼드는 걸, 시집까지 가주면 영 종 노릇 하게?”
“그도 그래. 하긴 그래두 늙으면 자식 생각 난다더라.”
“시집 안 가군 새끼 못 낳수?”
“예끼, 화냥년!” "하하하"
그때 연실이는 임신 삼 개월이었다. 따져보아도 누구의 종자인지는 분명치 못하였다. 그래서 때때로 이것을 뉘게다 책임을 지울까고 생각하고 하던 중이었다.
지금껏 진실한 의미로의 인생을 밟아보지 못한 이 처녀들은 인생의 근심을 몰랐다. 인생의 가장 중대한 일을 가장 가볍게 여기고, 웃음과 희롱 가운데서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그날 낮에 놀러갔던 연실이는 밤도 깊어서야 제 하숙으로 돌아왔다. 입덧이 나기 때문에 식성이 까다롭게 된 연실이는, 제 하숙의 낯익은 음식보다 '자루소바' 두 그릇을 참 맛있게 먹었다.
김연실전 - 12-2. 시집 안 가군 새끼 못 낳수?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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