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실이가 가지고 온 잡지를 내어들고, 명애에게 자기의 분함을 하소연하고 그 대책을 의논할 때에, 명애는 그따위 문제는 애당초 중대시하지도 않았다.

“거기 어디 김연실이라고 이름을 밝히기라도 했니?”

“밝히진 않았어두 ××음악학교 학생이라면 이십여 명 유학생 중 나밖에 어디 있우?”

“긁어 부스럼이니라. 우습지 않니? 김연실이라구 밝히지두 않았는데, 김연실이가 웬 까닭으루 나 욕했오 넘하구 덤벼드느냐 말이다? 얘, 수가 있느니라. 이렇게 해라.”

“어떻게?”

“아까 그 긴상 말이야. 긴상두 ××회(유학생회) 감찰부장이란다. 그 긴상이 말야, 내가 요전에 △△학교에 다니는 강상이라는 학생하구 이렇구 저렇구 할 때, 뭐 유학생에게 풍기를 문란케 하느니 어쩌니 해 가지구 매장을 한다 어쩐다 야단이란 말이지. 그래서 그 긴상의 내막을 알아보니, 자기도 그 송안나 하고 그 꼴이지.

그래서 말이로다, 만일 긴상이 참말루 샌님 같은 사람이면 할 수 없지만, 자기도 그러는 이상에 무슨 낯으로 큰말이냐 말이다. 그래서 이 여왕께서 찾아가 주었구나. 한번 비벼대줄 셈이었지. 그랬더니 '곤냐꾸'란 말이지. 흐늘흐늘 - 지금 애인이 되지 않았니?”

연실이는 멍하니 명애를 보았다. 경이(驚異)라는 것을 모르는 연실이는 놀랄 줄을 모른다. 감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연실이는 감동할 줄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연실이에게는 다만 예사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니, 그럼 난 어떡하면 좋수?”

“너도 나같이 그… 너 욕한 사람 말이다. 그 학생을 찾아가려무나. 상판대기에 분칠이나 곱게 하구 연지나 찍구 찾아가서, 이건 왜 이러우 하구 한마디만 턱 던지구 생긋 웃어만 보려무나. 그러면 나 잘못했소, 여왕님! 하구 네 발 아래 꿇어 엎드리지 않으리.”

“그러면?”

“그러면 됐지, 그 뒤가 있을 게 뭐람? 그러면 그 모(某) 도학 청년이 네 애인이 되지.”

“이상은 어쩌구?”

“차버리려무나. 차버리기가 아까우면 애인 두어 개 두구.”

“언니, 남자란 여자를 보면 그렇게두 오금을 못 쓰우?”

“맛이 좋거든.”

“맛이 좋단, 어떻게 좋우?”

“그게야 남자가 아니구야 어떻게 알겠니마는, 여자는 또 남자를 보면 그렇지 않더냐? 아유, 흥흥.”

명애는 무엇을 생각함인 듯이 힘있게 연실이를 쓸어안고 신음하면서 꺽꺽 힘을 주었다.

“언니, 내 진정으로 말한다면 나는요어디가 좋은지 몰라. 소설에 보면 말도 마음먹은 대로 못하고 애인의 얼굴두 바루 못 본다는 둥 별별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다 있는데 나는 아무리 그렇게 마음먹으려 해두 진정으로는 안 그래. 웬일일까? 그게 거짓말인가?”

“그건 모르겠다만, 얘, 잠자리 맛이란… 아유 흥흥 아유 죽겠다.”

“잠자리 맛이란 것두 따루 있우?”

“아이 망칙해. 우화등선 천하 제일감. 너 것두 아직 모르니?”

“몰라.”

“그럼 이상허구 뒤집어씌기는 어떻게 했느냐?”

“그게야 그럭허는 게니 그랬지.”

“얘두, 그럼 너 불구자로구나?”

단지 사내와 여인 - 애인끼리는 그런 노릇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연실이에게는, 이 말은 알지 못할 말이요, 겸하여 불안스러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