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과정으로 당연히 밟은 과정이라는 신념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듯 지적을 받으매 연실이는 아뜩하였다.

“그런데 왜?”

“……”

“내 언제 너 조용히 만나면 이야기 할려구 그랬다마는, 청춘 남녀가 연애야 안하겠니마는, 연애를 한대두 신성한 연애를 해라.”

순간적 부끄러움 때문에 머리를 수그렸던 연실이의 귀에도 이 말은 들어갔다. 소설에서 많이 읽은 바였다. 그러나 어떤 것이 신성한 연앤지는 실체를 아직 연실이는 알지 못하였다. 소설에 그런 대목이 나올 때마다, 다시 읽고 다시 읽고 하여 실체를 잡아보려 노력하였지만, 어떤 것이 신성한 연애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청춘 남녀 누구가 연애 안하겠니마는 신성한 연애를 해야 한다.”

“언니, 어떤 것이 신성한 연애유?”

연실이는 드디어 물었다.

“얘두! 그럼 너 여지껏 뭘 했니? 남녀가 육교를 하지 않고 사랑만 하는 게 신성한 연애지. 말하자면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 사랑하구 사랑 받구 하는 게 신성한 연애가 아니냐.”

이것은 연실이에게는 새로운 지식인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명애의 말로서 옳다 할진대, 이창수와 자기와의 것은 무엇으로 해석을 할 것인가?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한다 하면, 자기와 이창수는 전혀 마음이 통치 못하였다.

소설이면 엘렌 케이와 구리가와 박사의 말에는 그런 뜻이 있었던 듯싶다. 그러나 사람의 사회에 실제로까지 그런 꿈의 나라가 있으리라고는 연실이에게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날 명애는 이런 말도 하였다.

“내 애인은 말이다, 지금 W대학 문과에 다니는 사람이야. 본시 송안나 - 너도 알지? 그 여자 친목회 회장 말이다. 그 송안나허구 이러구 저러구 하던 사람이란다. 그걸 내가 알았지. 첨에는 송안나 그 담에는 최 ××, 또 그 담에는 박 ××, 그걸 내가 알았구나. 말하자면 최후의 승리자지.”

그리고 그 열변과 엄숙한 표정으로 친목회에서 지도자 노릇을 하던 송안나도 연애 찬미자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기이해서, 연실이가 물어본 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얘, 너두 철이 있느냐, 없느냐? 이 동경 여자 유학생치구 애인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디? 옛날 구식 여자는 모르겠다만, 신여성 치구 애인 없이 어떻게 행세를 한단 말이냐?”

누구는 누구가 애인이고 누구는 누구가 애인이고, 한참을 꼽아대었다.

연실이는 그러려니 하였다. 이 동경까지 와 있는 선각 여성이 자유 연애도 하지 않고 어쩔 것이냐? 사실에 있어서 연실이는 최근엔 단지 이창수뿐 아니라, 음악학교에 다니는 여러 남학생들과 단 하룻밤씩의 연애를 하고 있었다. 한 사내와만 연애를 한다 하는 것조차, 그에게 있어서는 유치한 감이 없지 않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