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교로 학적을 옮긴 뒤에 연실이는 두 가지로 마음이 매우 기뻤다.

첫째로는 그 학교의 남녀 학생간에 연애가 매우 많은 점이었다. 연애를 모르는 조선에 태어났기 때문에 연실이는 연애의 형식과 실체(감정이 아니다)를 몰랐다. 그가 읽은 여러 가지의 소설의 달콤한 장면을 보고 연애는 이런 것이어니 쯤으로 짐작밖에는 가지 못하였다.

이창수와 몇 번 연애(?)를 하여보았지만, 창수는 도리어 수동적(受動的)인 편이라, 연실이 자기가 부리는 연애밖에는 구경을 못하였다. 선각자로서 당연히 연애를 알고 또는 실행하여야 할 의무감을 가진 연실이는, 자기가 현재 이창수와 연애를 하면서도, 일찌기 책에서 읽은 바와 상이되는 점을 늘 미흡히 생각하고, 혹은 실제와 소설에는 차이가 있는가 의심하던 차에, 이 학교에서는 눈앞에 소설에서 보는 바와 같은 연애를 수두룩히 보았는지라 이것이 기뻤다.

둘째로는 전문학생이라는 자기의 지위가 기뻤다. 선각자로 자임하고 어서 선각자로서 조선의 깨지 못한 여성들을 깨치려는 희망은 품었지만, 고등여학교의 생도인 때는 전도가 감감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 학교에 입학을 하고 보니, 이제 삼 년만 지나면 자기는 전문학교의 출신으로, 어디에 내놓을지라도 뻐젓한 숙녀였다.

보라빛 치마와 화려한 긴 소매와 뒷덜미에 나비 모양으로 맨 리본과 뾰족한 구두의 이 전문학생은, 악보(樂譜)를 싼 커다란 책보를 앞으로 받치고 동경바닥을 활보하였다.

단지 이 처녀에게 있어서 아직도 불만이 있다 하면, 그것은 애인 이창수의 태도가 너무도 소극적인 점이었다. 로미오인 이창수가 줄리에트인 연실 자기의 창 아래 와서 연가(戀歌)는 못 부를지언정, 적어도 이 근처에 배회하기는 하여야 할 것이었다. 찾아오기가 바쁘면 하다못해 편지라도 해야 할 것이었다.

적어도 소설에 있는 연애하는 청년은 그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기는커녕 이편에서 찾아갈지라도 맞받아나오면서 쓸어안고 키스를 하고 해주지조차 못하고 싱그레 웃고 마는 것은, 연실이의 마음에 적지 않게 불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