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잡혀서 간신히 눈앞의 불은 껐다. 그러나 사람이 삶을 경영하는 동안은 언제까지든 의식의 종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라, 한 개의 불을 껐다고 문제가 아주 해소되는 것이 아니었다.
연실이의 소유물이 차차 줄어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값지고 경편한 물건이 차례로 없어졌다. 그러나 나중에는 물건을 선택할 처지가 못되었다. 육중하고 값 안나가는 물건, 내놓기 싫은 기념품까지도 차례로 나갔다.
전당국 출입이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했고, 남의 눈을 피하노라고 돌림길도 해보았지만, 차차 어느덧 비위가 생기고 값을 다투는 재간까지도 터득하였다.
명애는 ‘녀석의 주머니에서 돈을 따내라.’고 권고하였다. 명애며 안나며 그밖 이전 여류문사회의 멤버 또는 같은 성질의 여인들은 모두 그 수단으로 삶을 경영한다.
그러나 연실이는 그러기가 좀 어려웠다.
차마 용기가 안 났다. 예전 여류문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도 용감스럽게 그렇게도 비위좋게 능동적으로 정복적으로 남자에게 접근하였지만, 금전과 의식을 위해서는 그럴 용기가 당초에 나지 않았다. 저편 쪽에서 먼저 요구하여오면 피하거나 사양할 연실이가 아니었지만, 이쪽에서 능동적으로 나갈 용기는 없었다.
그런데 저편 쪽에서는 연실이에게 대해서만은 선착수를 피하려는 눈치가 분명하였다. 그 연유는 연실이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실정에 있어서는 명애나 안나나 그 무리들의 방종한 행위가 연실이보다 훨씬 더 심했지만,
인간으로서 연실이가 더 유명했기 때문에, 소문이 더 널리 퍼지고 많이 퍼지고, 에누리가 붙고 덤이 붙고 하여, 소문만으로는 연실이에게 걸려들었다가는 큰코를 다치게 되는 듯이 알려졌으므로, 상종하기를 피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무서워까지는 않는 사람일지라도 연실이가 하도 유명한 여인이라, 그와 사귀었다가는 자기도 소문이 높아질 것을 꺼리어서 피하였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또 '유명한 김연실'이에게 마음을 두었다가 방을 맞을까보아 마음도 안 두었다. 이런 관계들로 연실이는 피동적 입장에 서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능동적으로 자기가 못 나서고 피동적으로는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 이 길로는 단념할밖에는 없었다.
어찌어찌해서 만나게 되는 사람도 하루 이틀에 그치지 오래 계속되는 사람이 없었다.
연실이의 생활은 차차 참담하여갔다. 전당잡힐 물건도 이젠 다 잡혀먹고, 어찌어찌하다가 요행 얻어 만나는 이성 친구는 오래 계속되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그의 친구들도 모두 옛날 경기 좋은 세월과 달라서 자기네의 경제문제 해결에도 허덕이는 판이니 거기 덧붙을 수도 없고 -
풀죽은 치마에 굵은 양말, 검정 고무신, 흐트러진 머리칼. 전당질 생활 일년 뒤에는 그의 모양은 초라하기 짝이 없이 되고, 그 위에 수심과 영양불량으로 안색까지 초췌하고 야위어서 딴 사람같이 되었다. 물론 하숙 생활을 그만두고 밤 껍질 만한 셋방 하나를 얻어 자취 생활을 하는 지도 오래였으며, 주머니의 시재 결과로써 굶은 끼니도 적지 않았다.
본시부터도 몽상과 공상을 그다지 모르고 지냈지만, 생활고에 부대끼면서부터는 그런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이 주머니를 털고는 그 뒤는 무엇으로 먹고 무엇으로 사나 - 딱 눈앞에 닥쳐 있는 이 문제는 다른 생각(근심까지라도)을 할 겨를을 주지를 않았다.
문학? 문학을 박차버린 지는 벌써 오래다. 자신(自信)을 잃은 것이었다. 옛날 자기를 에워싼 청년들과 자기 자신의 사이에 지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는 그만한 차이는 있어도 될 것이다, 이만치 생각하고 불안 가운데서도 스스로 위로하고 안심하고 지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의 그릇된 생각이었다.
조선 여류문사 제1기생인 연실이며 최명애, 송안나, 누구 누구, 이 사람들이 밟은 전철(前轍)을 경계 삼아 출발한 제2기생의 걸음걸이는 훨씬 견실하였다.
견실한 것이 더 문학적인지 혹은 방종한 것이 더 문학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견실하니 만치 더 이지적(理智的)이요, 이지적이니 만치 더 현실적이요, 굳세고 믿음성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제 1기생들이 '작품 없는 문학 생활'에 골몰할 동안, 제2 기생들은 영영공공 습작(習作)에 정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연애도 잃어버리고 문학도 박차버린 연실이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 갖은 애를 다 썼다.
그러나 잡힐 물건도 이제는 동이 났고, 연애 수입은 몇 푼 되지도 않거니와 대중도 할 수 없고, 장차는 굶거나 동냥을 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의 길밖에는 남지를 않게 되었다. 어느 편을 취하나?
굶을 수도 없다. 동냥도 차마 못하겠다. 남은 길은 둘밖에 없는데 둘 다 취할 수가 없었다. 그밖에는 인생의 최후의 길 - '죽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막다른 골에서, 연실이는 비로소 고향 평양에는 부모와 동생이 있다는 일이 생각났다. 음신조차 끊기기 십 년이나 되매, 혹은 그들 중에는 작고한 사람도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다야 작고하였으랴. 남보다 그래도 혈기가 나을 것이다.
며칠 뒤 연실이는 간신히 차비를 마련해 가지고 평양으로 내려갔다.
김연실전 - 23.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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