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오른편 3호 쪽에서 쿵쿵 이쪽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와 중사는 얘기를 멈췄다. 맨 앞에서 전령을 보던 오태봉이 잽싸게 철창 앞으로 나아갔고, 그는 이내 3호에서 건너오는 메시지를 받아들고 이 중사 앞으로 다가왔다.
근무자가 보지 않았어?
예, 광일이는 지금 6호에서 타작하고 있습니다.
오태봉은 두 손으로 방금 3호에서 전달되어온 쪽지를 중사에게 내어밀고는 부동자세로 서서 대답하고 있었다.
누가 맞나?
어제 온 신참입니다. 그 새끼 되게 작살나고 있습니다. 그 새끼가 이 수병에게 말대꾸를 한 거 같애요.
그 새끼가 뭐라구 했어!
이 새끼 기름칠이구만.
오태봉은 결코 6호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았을 까닭은 없는데 단지 자기의 상상을 적당히 각색해서 이광일 수병님과 그의 주먹에 작살났다는 신참의 흉내를 열심히 내고 있었다.
그래 기름칠이요. 그러니까 어떻다는 거요?
오태봉은 뻣뻣하게 서서 중사에게 대어드는 시늉을 했다. 하, 이랬다는데요. 기름칠이라구 괄세 마라 이거지요.
그 새끼 배짱 한번 좋았어.
변소 문 옆에 앉아 있던 정철훈 하사가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
그 새끼 맞아야 되겠구만.
중사는 간단히 결론을 내렸고. 오태봉은 철창 쪽으로 돌아갔다. 이때 어이쿠! 어이쿠! 하는 비명소리와 철창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고 이 새꺄, 뭐라구? 이 씨팔새끼 뭐라구? 하는 이광일 수병님의 노성도 들려왔다. 이 수병님은 말이 적은 대신 펀치가 비길 데 없이 세고, 그리고 일단 손을 대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으므로 6호 쪽에서 어이쿠! 어이쿠! 소리가 계속 들려와도 재소자들은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한쪽에서 방금 3호에서 전달되어온 메시지를 읽고 난 이 중사는 주먹으로 턱을 괴고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정철훈 하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지?
뭔데요?
정 하사가 묻자, 중사는 대답 대신 메시지를 하사에게 던졌다. 하사는 그것을 빠르게 읽고 역시 난감한 표정으로 중사를 건너다보았다.
결정하시죠.
두 마리뿐이라고 그랬지?
네 딱 두 마리.
대가리는 있나?
대가리도 세 개뿐입죠.
하사는 강아지와 대가리가 감추어져 있는 자기의 바른쪽 발목을 손으로 탁 쳐보였다.
무어라고 썼어요?
순열씨는 중사의 난처한 표정을 향해 말했다.
그거 좀 보여드려. 그리고 볼펜과 종이를 내놔.
이윽고 결정을 내린 듯 중사는 하사에게 지시하고는 정 하사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받아 읽고 있는 순열씨의 거동을 넌지시 지켜보았다.
-2호에게-
이 중사님.
생략하옵고 국방부 고등군법회의는 이십일 경 있을 예정이라고 함. 본건 어제 감실에 다녀온 배 하사의 전달 사항임. 중사님의 행운을, 그리고 지난번 문의 사항에 대해서 우선 2호의 선생님은 죄명이 무엇이며 사회에서 하신 일은 무엇인지요? 죄명을 좀더 구체적으로 적어보낼 것.
그렇지 않으면 형량을 추측키 곤란함. 2호의 선생님께 본인의 존경과 또한 만수무강의 기원을 아울러 전함. 소생 미흡하와 선생님의 존함은 일찌기 뵙지 못했으나 아침에 세수하실 때 선생님의 존안을 여러 차례 뵈온 일이 있음. 그리고 이 중사에게 우리들의 변함없는 의리와 우정을 위해 축배를 듭시다. 물론 소금 국물을 포도주로 알고 말입니다.
2호에는 지금 강아지의 여분이 있는가요? 지난번 면회 때 08을 잡지 못한 죄의 대가로 오늘은 종일 굶었습니다. 여분이 있으시다면 우리들의 변함없는 우정을 위해 3호에게도 한 모금을 베풀어주시기를. 즉각 회신 바람.
신종술 배상
-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