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변소가 잘못되었나요?
순열씨는 자지러드는 목소리로 가까스로 반문했다.
이 새꺄, 가르쳐드려. 소변이라고. 여보 그렇죠, 소변이죠?
이때 중사가 가로막고 나서서 정 하사의 다음 폭언을 제지했다.
몇 번이나 가르쳐줬어요. 그런데도……
또 가르쳐드려, 이 새꺄.
2호 일명 소변, 아니면 대변 마음 꼴리는 대로 골라 하슈.
하사는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혹은 못 참을 것을 참는다는 듯이 여전히 열기로 불을 뿜는 눈으로 사방을 한바탕 휘둘러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때서야 순열씨는 돌아서서 철창 앞으로 다시 걸어갔다. 그는 하사에 대한 까닭 모를 두려움에 소변과 변소의 어휘마저 구분하지 못한 자기 의식에 대한 수치심이 겹치어 관자놀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2호 일명 소변.
그는 기어나오는 목소리로 다시금 신고하고 천천히 변소로 들어갔다. 그의 뒷전에서 웃음과 조소를 참았던 자들이 쪼다, 무엇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그는 들었다.
만일 엉터리 신고가 들키면 우리 모두 작살납니다.
그가 변소에서 나오자 중사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선생은 그 가장 쉬운 걸 잊어먹나요?
글쎄요. 나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저놈에겐 조금 주의해두쇼.
중사는 순열씨의 바싹 곁으로 다가앉으면서 정철훈 하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들은 제일 상좌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늘 가까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열을 지어 정좌나 평좌를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정철훈 하사는 늘 세 번째 상좌를 사양했다.
그는 서열로 본다면 당연히 지금 순열씨가 앉아 있는 중사의 옆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편히쉬어나, 열을 짓지 않는 평좌시간에는 세 번째 상좌마저 사양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는 거의 말석에 가까운 변소 문 바로 옆자리에 묵묵히 앉아 계속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저놈은 내 후계자가 될 게요. 그래서 지금부터 훈련을 조금씩 시키고 있죠.
그가 훈련을 시킨다는 것은 2호의 동료들이 정 하사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뜻하는 것이었다. 중사는 자주 자체 징벌의 하수를 정 하사에게 떠넘겼고, 때로는 정 하사 스스로 신참을 벌하는 일도 많았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거요. 이십 일 이후면 나는 나가는데 그때부터가 걱정이란 말요. 물론 내가 저놈에게 선생을 잘 보살피라고 이르고 나가겠지만.
이때만은 중사도 정 하사가 듣지 않도록 적당히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가 그답지 않게 정 하사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까닭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자 순열씨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나는 중사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겁장일까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또 견디어갈 겁니다.
물론 그러셔야지요. 그렇고말고.
그는 너스레를 떨고 나서 다시 하던 말을 이어갔다.
내가 저놈을 지금 매우 학대하는 것 같지만, 그건 일부러 그러는 거죠. 나는 사실 저놈을 매우 좋아하거든요. 저놈하곤 이년 가까이 함께 지냈으니까 정이 들었죠. 생각해보슈. 우린 모포 한 장 없이 이 바닥에서 한겨울을 함께 지냈거든요. 지금은 호텔입니다. 작년 겨울만 해도 우린 서로 가랑이를 끼고 서로의 체온으로 밤을 지샜거든요. 그래 난 저놈을 못내 사랑하죠. 저놈은 틀림없이 일류 감방장이 될 게요.
중사의 목소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점점 커져서 2호의 누구나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정철훈 하사는 중사가 자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자 세운 무릎 사이로 잔뜩 숙였던 머리를 치켜들고 중사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듣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말하는 중사의 표정이며 손짓 발짓까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순열씨는 그가 이따금 얘기를 듣고 있는 자기 쪽도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눈길을 느낄 때마가 순열씨는 왠지 자기 몸이 자꾸 움츠러드는 듯한 기분에 빠졌다. 저 사나이는 중사의 후계자이다. 이제 중사가 그걸 공언했고 그리고 지금 저 사나이를 보면 확실히 후계자다운 기상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는 마치 미구에 먹이 사냥을 나서기 위해 덩굴 속에 숨어서 잔뜩 움츠리고 기다리고 있는 맹수처럼 변소 문 옆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선생, 당신은 저놈의 죄명을 들은 일 있소?
없어요.
그럴 게요. 저놈은 자기 신상에 관해서 아무에게나 말하지 않는 놈이죠. 지금까지 저놈하고 속을 털어놓고 얘기한 건 나뿐일 게요. 난 저놈의 항고 이유서까지 써주었으니까. 그런데 저놈이 말요. 전도사에게 침을 뱉은 놈이요. 그 왜 있지 않소. 일요일이면 할렐루야! 하고 소리치면서 히틀러처럼 손을 번쩍 쳐들고 들어오는 복음 교회의 앤경 낀 전도사 말요.
그 새끼가 저놈에게 다가와서, 당신과 얘기하구 싶소. 하느님은 당신의 죄 따위는 죄라고 여기지도 않으니까 이 세상에는 당신 말고도 정말 큰 죄인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당신의 괴로움을 하느님께 얘기만 하면 당신은 죄에서 구원될 수 있다. 하느님은 여하한 범죄 자체보다도 속죄 않느냐, 그가 속죄 하느냐 이걸 중히 여기신다.
하고 따라붙이며 유혹해왔을 때 저놈이 그 앤경 낀 새끼에게,
이 새꺄, 칵.
하고 침을 뱉고는,
너두 결국은 도둑놈일 게고, 그러니까 도둑놈과는 말도 하기 싫다, 라고 쏘아붙이고 만 거죠. 흐흐흐. 그러니까 저 놈은 그 새끼가 이 세상에는 더 큰 죄인이, 진정한 죄인이 있다고 속임수를 쓰고 따라붙이려고 할 적에 거게 넘어가지 않은 거죠. 아무튼 저놈은 묘한 놈이 돼나서 아무에게도 자기 신상에 관한 얘기는 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