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를 쓰느라고 한참이나 땀 흘리며 엎드려 끙끙거리던 중사는 가까스로 끝을 맺고는 허리를 폈다.
이거 전해라.
그는 종이를 정철훈 하사에게 건네주었고 하사는 그것을 받아서 그것으로 방금 자기의 양말 섶에서 꺼낸 한 대의 강아지와 한 개의 대가리를 조심스레 쌌다. 정 하사는 메시지를 손수 전할 참인지 일어서서 3호 쪽의 벽가로 비켜섰다.
주십쇼. 일루.
전령을 보고 있던 오태봉이 손을 내밀었으나 하사는 손을 저었다.
비켜.
정철훈 하사는 주먹으로 3호 쪽 벽을 두어 번 두드렸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은 하사의 주먹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으나 다만 쿵쿵 하고 낮은 소리로 울렸다. 그것은 간다, 받아라 하는 신호였다.
오태봉이 비켜선 자리로 정 하사는 조심조심 다가섰다. 전령을 제쳐 놓고 손수 벽을 따라 철창 쪽으로 조심조심 다가가는 하사의 이 태도는 나는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위험한 일은 이제부터 내가 도맡겠다라고 그가 웅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매우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하사의 재빠른 솜씨로 메시지는 순식간에 전달되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돌아서면서 그 두꺼운 입술에 싱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은 그가 근무자에게 발각되지 않고 메시지를 무사히 전달했다는 증거였다. 그는 쉽사리 해치웠다라고 뽐내는 듯 벌쭉벌쭉 웃으면서 느긋한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 새꺄, 웃지 마.
이때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오는 정 하사에게 중사는 화를 벌컥 냈다. 하사는 흠칫 놀라 그자리에 멈춰섰고 사나운 얼굴에서 재롱을 떠는 듯한 웃음은 싹 가시었다.
넌 이 새꺄 썩었어.
중사는 다시 영문 모를 욕지거리를 정철훈에게 내뱉었다. 정철훈은 금방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그가 자기의 능글맞은 웃음을 중사에게 보였고, 또 중사가 보는 앞에서 여유작작하게 걸어왔던 것은 확실히 그의 실수였다. 2호에서 다른 놈은 그따위 웃음이나 걸음새를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와서 그는 가끔 착각을 일으킬 때가 있었다.
이를테면 적어도 2호에서는 자기 거동을 지켜보는 눈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사의 일갈로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아직도 2호에는 그 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시무룩한 얼굴로 변소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변소 문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저 새끼도 이제 돌았다구.
이 중사는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혼자서 지껄였다. 그는 예의 그 늑대의 옆눈길로 잠시 동안 정철훈을 노려보더니 이내 히히 흐흐 하고 웃기 시작했다.
하긴 미친 척하고 사는기라, 하지만 저 새끼 웃는 거는 불쾌하단 말야. 뭐이 좋다구. 쓸개 빠진 새끼. 난 너 이 새끼 웃는 까닭을 알구 있다구. 내 나가면 왕이 된다 이거지?
중사의 늑대 눈이 그를 노려보았지만 정철훈은 세운 다리 사이에 머리를 깊이 처박은 채 잠자코 있었다.
선생.
중사는 시선을 갑자기 순열씨에게 돌리고 가만히 말했다.
저놈의 형기를 아우? 모르죠? 저놈은 원래 무기징역이었죠.
무기징역이 뭐요?
하고 순열씨는 자기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는 순간 하사의 형기가 무기라는 사실보다도 그 어휘가 주는 엄청난 파문에 놀라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그러면 무기징역이란 말이요.
그렇죠. 무기였죠. 하지만 지금은 무기는 아니죠. 원래 무기였다, 이겁니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됐죠?
월남 현지 재판에서 무기를 받았지만 여기 압송된 뒤에 이심에서 십사 년으로 감형된 거요. 지금 또 상고중이지만 벌써 기각된 일이 있으니까 이번에도 결과는 뻔하죠. 씨팔 십사 년이면 말이 십사 년이지, 좆도 완전히 찌그러진 거요.
저 사람 죄명이 무언데요?
양민 학살입니다. 저 새낀 사람 많이 죽였다우. 3호의 배 하사 새끼도 사람을 죽이고 들어온 놈이지만 그건 그래도 다섯이고, 이놈은 수백 명을 무더기로 깐 거요. 저놈 눈을 보면 핏발이 서 있는 게 조금 다른 데가 있어요. 사람 죽인 놈 눈은 확실히 다릅니다. 이따가 선생도 저놈 눈을 자세히 보슈. 저놈이 쏘아보면 나도 섬뜩할 때가 있다니까. 씨팔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