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작전에 앞서 수색대를 이끌고 작전지구로 나갔죠. 그런데 적이 점령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마을이 텅 비어 있었어요. 적은 벌써 우리 작전을 예측하고 마을에서 개울 하나 건너 있는 고노이 성으로 철수해버린 거죠.

 

난 분대를 이끌고 무인지경인 마을로 들어가 집, 돼지우리 할 것 없이 마구 뒤지고 다녔다 이겁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집 뒤뜰을 지나가는데 이상한 예감이, 수군수군 말하는 소리 같은 게 들려서 난 벌써 거기 뒤뜰 절벽에 뭐가 있다 즉각 안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 절벽에 가마니로 교묘하게 은폐된 굴이 있었다 이거요. 나와, 이 새끼들아 하고 내가 월남어로 소리치자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딱 그쳤죠. 나와, 이 새끼들아 하고 그래서 다시 소리쳤죠. 그래도 안 나와요.

 

그래서 수류탄의 안전핀을 까들고 가마니를 휙 젖히고 굴로 들어갔죠. 이 새끼들 안 나오면 수류탄을 집어넣겠어, 하고 굴속에서 소리치니까 손을 들고 나오는데 보니까 쉰 넘어 뵈는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이렇게 둘이었죠. 또 하나는 돼지우리 속에서 잡았어요.

 

이 치가 몸에 돼지 똥을 잔뜩 바르고 돼지를 꼭 껴안고 있더라 이겁니다. 참 별놈 다 봤어요. 이 새낄 내가 뒷덜미를 잡아끌어냈죠. 이 새끼가 끌어내려고 하니까 돼지를 꽉 껴안고 안 나오려고 하는 게 나는 돼지다 난 보다시피 돼지다. 돼지니까 그냥 돼지로 알고 지나가거라. 이런 식이죠, 흐흐흐, 참 별놈 다 봤어요.

 

난 셋을 잡아다 길가에 앉혀놨어요. 이걸 죽일 생각은 물론 없었죠. 소대가 도착하면 곧 후송시킬 참이었다구요. 잠시 후에 곧 소대가 도착했어요. 그런데 엠병할, 소대가 도착하자마자, 여태 잠잠하던 고노이 성 쪽에서 일제 사격이 시작되는 거요.

 

고노이는 적의 아성인데다 워낙 숲이 많아서 새끼들이 어디서 쏘는지 도무지 뵈질 않아요. 그날은 또 유독 안개가 자욱했죠. 우리 소대는 그러니까 미처 포진이고 나발이고 할 겨를도 없이 마구 고노이 쪽에 대고 갈긴 겁니다. 정신없이 갈기는데 이 새끼들이 도망친다 이겁니다. 나이 먹은 치들이 어떻게 번개같이 도망치는지 난 놀랐죠.

 

돌아오지 않으면 쏜다, 하고 나는 몇 번이나 소리쳤어요. 이 새끼들은 한번 빼면 그런데 절대로 돌아다보거나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죠. 그래도 처음엔 쏘지 않고 공포 몇 발 쏘고 돌아오라고 불렀죠. 이 새끼들이 돌아옵니까. 그런데 이 새끼들 도망치는 방향이 고노이 쪽이다 이거요. 작전중인데 더 생각할 게 있어요? 그냥 쏘아버렸지요.

 

그러니까 당신은 그들이 틀림없이 베트콩이다 하고 확신한 거군요.

 

그렇죠. 그 새끼들 고노이 쪽으로 간 것만 봐도 틀림없어요. 또 우리 대대 방침은 작전지구에서는 지뢰를 매설할 수 있는 놈은 모두 적으로 보아라, 그러니까 제 발로 걷는 놈은 모두 적으로 보아라 이겁니다.

 

정철훈은 말을 마치고 제물에 지친 듯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선생, 어떻게 생각하시우? 난 십사 년이면 마흔 살이 돼요.

 

정철훈의 목소리는 갑자기 아주 맥이 풀린 것처럼 들렸다.

 

난 당신 이야기가 충분히 수긍이 가요. 당신 말마따나 십사 년은 고사하고 십사일도 억울할는지 모르죠. 그렇지만 나는 까마귀가 아니니까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따위는 지금 아무런 쓸모도 없죠.

 

그게 아닙니다.

 

정철훈은 순열씨의 말에 생기를 얻은 듯 힘을 주어 말했다.

 

난 선생께 부탁 하나 있어요. 선생, 그걸 좀 써주시오. 내 상고 이유서 말요. 데빡이 써준 게 있지만 선생이 새로 하나 써주시오.

 

정철훈은 순열씨를 올려다보면서 마치 어린애처럼 연거푸 간청했다.

 

그걸 쓰는 거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써달라면 써드리죠. 하지만 종이 한 장에 무슨 기대를 걸 수는 없을 거요. 까마귀들은 특히 그런 종류의 호소나 애원에는 강하니까요.

 

하지만 해보는 데까지 해보기루 작정했어요. 해볼 때까지.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군요. 날이 새면 종이하구 연필을 준비해드릴 테니까 초안을 잡아봐요.

 

정철훈은 벌떡 일어나 잠자는 동료들을 건너뛰어 다시 그의 잠자리로 돌아갔다.

 

순열씨는 돌아가는 정철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오늘따라 마치 병약한 사내처럼 어두운 그늘로 덮여 있었고 그의 숨소리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로 변해 있었다. 순열씨는 이때 정철훈의 상고 이유서에 어쩐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쓸 것 같은 기우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말하자면 정철훈의 가사를 빌어 자기의 곡조를 노래하는 격이었다. 그는 이 기우가 기우로 끝나기만을 바랐다. 왜냐하면 그것은 취한의 노래처럼 들릴 것이고 그 결과는 분명히 정철훈에게 역효과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2시에 5번 교대를 하려고 눈을 뜬 천명오는 철창 앞 불침번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순열씨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탈진한 사람처럼 얼이 빠진 얼굴 위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천명오는 너무 놀라 발이 묶인 듯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순열씨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천명오가 놀란 것은 단지 순열씨의 울음 때문이 아니라 그가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고 천연스럽게 울고 있는 태도였다. 이때 순열씨의 울음소리는 갑자기 폭발하듯 더욱 격렬해졌다.

 

그 바람에 2호 동료들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 중사, 정철훈, 오태봉 그리고 그밖의 신참들은 자다가 놀라 깨어나 눈을 비비고 그들의 수면을 방해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순열씨라는 것을 알자, 이번에는 더욱 놀랐다.

 

저 친구가 갑자기 미쳤나? 가서 울지 말라고 해.

 

중사가 이렇게 말했지만 아무도 순열씨에게 다가가 그가 우는 것을 제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선 이 조용하고 침착한 사나이가 저토록 어깨를 들먹이며 짐승처럼 끼륵끼륵 괴이한 소리로 마구 울고 있는 모양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어쩐지 선생의 울음을 제지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야. 우는 게?

 

이때 울음소리를 듣고 어느새 2호 앞에 다가선 근무자가 물어왔다. 그는 펀치의 위력을 특징으로 하는 이광일 수병님이었다.

 

2호의 동료들은 질겁을 하고 눈을 가리듯 깊이 내려쓴 근무자의 하얀 파이버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 드디어 선생이 근무자에게 작살이 나는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는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다.

 

이광일 수병님은 근무자가 다가와도 여전히 격렬한 울음을 멈추지 않는 순열씨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거동에는 2호의 동료들이 예측했던 그런 변화는 오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이 초라한 사나이가 어깨를 들먹이며 거리낌 없이 마구 울고 있는 매우 우습고도 삭막한 풍경을 2호 사람들과 더불어 오랫동안 구경하고 서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