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나가기 전엔 시장에서 구루마를 끌고 채소를 운반했죠. 그런데 하루 종일 좆빠지게 왕십리에서 동대문까지, 동대문에서 청량리까지 뛰어다녔지만 돈벌이는커녕 굶고 지낼 때가 많았다 이겁니다. 그래서 월남으로 지원했죠. 씨팔 월남서는 한때 좋았죠. 한바탕 뛰고 나면 먹을 것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하사님 그럼 당신은 먹기 위해서 월남에 갔다 이거요?

 

순열씨는 부지중에 이렇게 물었다.

 

그래요. 배불리 좀 먹을까 하고 간 거요.

 

정철훈은 외치듯이 갑자기 사나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먹고살려고 죽음의 곁으로 간 겁니까?

 

뭐요? 뭐 잘못된 게 있소? 그런 거는 얼마든지 있다구. 화장장이도 있고 묘지기도 있고, 난 비겁한 새끼들처럼 죽는 것은 무서워 않는다구.

 

정철훈은 눈을 부릅뜨고 순열씨를 노려보았다.

 

이거 봐요, 당신은 전쟁에 나가본 일 있소?

 

그가 퉁명스럽게 묻자, 순열씨는 다소 당황했다. 그는 하사가 이렇게 묻는 의도를 알았다. 아니 하사는 벌써부터 순열씨가 적을 죽여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었고 그것은 하사가 순열씨를 경원하는 이유 중의 가장 큰 것이란 것을 순열씨는 어렴풋이 느껴왔던 것이다.

 

난 싸워보지 않았소.

 

그렇다면 당신은 나에게 말할 자격도 없다구. 당신은 무어라고 떠들지만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아, 난 까다로운 건 질색이야.

 

그는 자못 경멸조로 말하고 혼자서 느긋해진 표정으로 중사를 보았다.

 

중사님, 내 삼십 명 죽였단 얘기 할까요?

 

그는 신이 나서 중사의 대답도 듣지 않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난 총 들고 싸우러 나가면 재미가 나요. 질질 매고 꽁무니 빼는 새끼들은 이해가 안 간다 이거요. 그날 우리는 베트콩 포로를 무더기로 잡았죠. 소대장이 야 정철훈, 네가 처리해 이러잖아요, 소대장님 상부지시를 받았습니까? 하니까 이 새꺄 급한데 상부고 나발이고가 어딨어 이러잖아요.

 

하긴 우린 곧 다음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는 참이었고 포로 호송할 병력도 모자라는 판이었죠. 이 새끼들 삐딱하면 뺀다 이겁니다. 그래 내 분대를 데리고 그 새끼들을 구덩이 속에 넣어 놓고 수류탄을 몇 개 넣어줬죠. 꽝 하더니 어깻죽지, 손가락, 대가리, 뭐가 뭔지 모르게 조그만 쪼가리들이 하늘로 막 날습디다.

 

그런데 구덩이에 안 들어가겠다고 앙탈한 여자 하나가 있었죠. 난 그걸 따로 떼어놓았죠. 부하 어떤 놈에게 그건 네가 해치워 하니까 이 쪼다새끼가 분대장님 전 못해요, 이러잖아요. 쪼다 같은 새끼, 하는 수 없이 내가 나섰죠. M16 참 무서워요, 그때 막 지급받은 참이었죠. 내가 이년을 겨누고 쏘는데 한 발 쏘았더니, 대가리가 이마 위쪽만 칼로 등글게 쪼갠 듯이 날아가버렸죠.

 

나는 M16을 처음 쓰던 때라 놀랐죠. 저러는 수도 있나 하고, 그래 그만 돌아설까 했죠. 그런데 이 여자가 눈만 남아가지고 날 무섭게 노려보잖아요, 날 무섭게 증오하는 눈초리로. 난 자기를 미워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서 그 눈을 겨누고 한 방 더 쏘았죠. 이번엔 모가지까지 휙 날아버렸죠.

 

이 새꺄 난 그 얘기 벌써 두 번째 듣는 거야.

 

아니 갑자기 그 여자 눈이 생각나서 그랬죠, 난 미운 생각은 없는데 그 여자는 날 지독하게 쏘아보더라니까요.

 

그래 이 새꺄 넌 그 귀신들에게 맞아 죽을 거야 이제.

 

하하, 귀신이 주먹이 어딨어요? 귀신이 어딨어.

 

정철훈은 어처구니없는 듯 낄낄대고 웃었다.

 

난 이렇게 끄덕없이 살만 찌고 잘 지내는 걸요.

 

이때 3호 쪽에서 쿵쿵 벽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던 중사는 용수철에 튕기듯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중사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에 오태봉은 벌써 3호와 맞붙은 철창가의 벽 모서리에 찰싹 붙어 있었다. 오태봉은 이내 종이로 싼 조그만 꾸러미를 손아귀에 감춰들고 중사 앞으로 다가왔다.

 

있구나 있어.

 

중사는 갑자기 활기를 띤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마치 수혈을 받은 환자처럼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는 꾸러미를 자기가 받지 않고 정철훈에게 받으라고 손짓을 했다. 이때 그의 밝은 표정이 갑자기 경련하는 것을 순열씨는 얼핏 보았다.

 

펴봐, 펴봐.

 

하고 중사는 조급한 소리로 정철훈에게 재촉했다.

 

꾸러미 속에서는 강아지 두 마리 대가리 두 개가 나왔다. 정철훈은 얼른 철창 쪽에 등을 대고 돌아앉아 그것을 자기 양말 속에 집어넣은 다음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