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열씨의 말에 중사는 또다시 발작하듯 웃기 시작했다. 그는 웃을 뿐만 아니라 주먹으로 순열씨의 허벅다리를 문지르고 두 다리를 발광하듯 흔들어댔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그 발광을 딱 멈추고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선생, 사실 미친 척하구 사는 거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진짜로 미쳤을 거요. …사실 그 새끼가 권총만 빼지 않았대두 그 씨팔 새파란 소위 새끼가.
중사의 음성은 저절로 커지고 있었다.
누구 말인가요?
순열씨는 그의 흥분되어 가는 얼굴을 향해 나지막히 물었다.
내가 그 새끼 땜에 씨팔 2년 반을 지금 여기서 썩는 거요. 씨팔 새끼가, 새파란 소위 새끼가 상관이라구 나 더러워서.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날 저녁때였죠. 다낭의 클럽에서 지금 5호에 있는 박 중사허구 꽁까이 하나씩 옆에 끼고 거나하게 마시는 참인데 그 새끼가 들어왔죠.
그 새낀 벌써 어디서 진탕 처마시고 오는 참이었다구. 이 새끼가 들어오더니 술도 안 마시고 다짜고짜 까이를 내놓으라구 하지 않소? 주인이 여자는 지금 없다. 여자는 지금 모두 손님에게 가 있다 하니까, 이 새끼가 다짜고짜 우리에게 와서 박 중사의 까이 어깨를 잡아당기는 거요.
하 씨팔 새끼. 쫄병 새끼들이 함부로 누구 앞에서 기분 내느냐고 호통 치면서 말요. 그래 박 중사가 한 대 친 거요. 그런데 그게 설맞았다 이거요. 박 중사 새낀 성질만 급했지 주먹은 약하거든. 이 새끼가 설맞아노니까 길길이 날뛰지 뭐요. 씨팔 쫄병 뭐라고 연방 씨부렁거리면서. 술이 확 깨버렸죠.
내가 뭐 그때 경거망동한 줄 아슈? 난 그래도 참으면서 박 중사가 붙으려는 걸 말렸다 이거요. 그런데 싸움 말리는 참인데 어퍼컷이 훅 날아왔죠. 눈에서 불이 번쩍하는데 정신 있을 게 뭐요? 참아서 남 주나 하지만 그때 참는 새낀 쌍말로 개 뭣에서 나온 새끼지, 에이 씨팔 나도 모르겠다 하고 한 방 보냈죠.
그걸 맞고 안 쓰러지고 배겨요? 그 새끼가, 그 새끼가 픽 나가 쓰러지는데 이건 뭐요? 보니까 권총을 빼들었지 않아요? 이 새낀 누운 채 몇 번 버르적거리더니 팡팡 하고 공포 몇 방을 쏜 거요. 그러니까 그 소리 듣고 엠피가 와서 챈 거죠. 그 씨팔 권총만 쏘지 않았대도 끄떡없는 건데.
야 정철훈, 강아지 하나두 없냐?
그는 강아지가 없는 줄 알면서도 입버릇처럼 물었다.
어제 저녁 다 떨어졌지 않습니까?
벽에 기대앉았던 정철훈이 얼른 몸을 세우고 대답했다.
이 새꺄, 말 안해도 알고 있다구. 이 새끼들 주지 않는군. 3호에서도 소식이 없고… 아무튼 이제 찌그러졌으니까 할 말은 없다구.
정철훈은 몸을 반쯤 일으키고 안절부절이었다. 그는 강아지가 없는 게 자기 책임이나 되는 것처럼 몹시 괴로운 눈초리로 데빡을 바라보았다.
3호로 연락을 해볼까요?
관둬. 신종술은 있으면서 보내지 않을 놈은 아냐. 난 그놈 의리를 알아. 3호는 지금 2호에 없다는 걸 알지?
그렇죠.
그럼 기다려보는 거야. 3호 아니면 총장이라도 한두 마리쯤 갖다주겠지. 총장 그 새끼도 양심이 있지. 08을 며칠 걸렀다구 설마 싹 씻겠나 이거야.
중사는 침구 곁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벌렁 자빠져서 팔베개를 했다.
우리 선생, 목이 타도 좀 참으슈.
그는 그 귀여운 웃음을 보내면서 순열씨에게 말했다.
당신 그런데 고생하려구 강아지 귀신이구먼그래. 당신 도대체 사회에 있을 때 하루에 강아지 몇 섬씩이나 태웠수?
두 섬 정도 태웠죠.
허, 두 섬? 내 그럴 것 같았어요. 난 당신이 2호에 처음 들어올 때, 흥 강아지 귀신이 들어오는군 이랬다구. 난 누가 새로 투숙해오면 맨 첨 그것 먼저 보죠. 이 사람 강아지를 얼마나 태우나 하고 관상을 본다 이거요. 당신이 처음 들어올 땐 참 멋있었어. 머리 스타일이나 인상이 꼭 불란서 배우 같았다구. 지금은 찌그러졌지만.
야, 정철훈, 넌 이 새꺄 널 출세시켜준 선생님께 고맙다구 인사나 드려. 만약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넌 네 신분도 모르고 지냈을 거 아냐?
정철훈은 잠시 동안 정색을 하고 묵묵히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그는 방금 명명을 받은 것과 그리고 거기에 따른 절대 권력을 곧 자기 손아귀에 쥐게 된다는 데 자못 감동한 것 같았다. 그는 이내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고 그가 그렇게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띠는 것을 순열씨는 처음 보았다.
중사님 말씀이 맞아요. 난 출세했죠. 난 월남에서 C레이션을 까먹고 지낼 때를 빼놓고는 지금이 제일 좋아요.
순열씨는 깜짝 놀라 말하고 있는 정철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사나이는 지금 무어라고 말했는가. 그는 정철훈이 농담을 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정철훈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