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에게

 

이 중사님.

 

방금 배 하사가 감실에 다녀왔기에 소식 전함. 국방부 공판은 또 연기될 것 같소. 날짜는 확실히 모르나 다만 이십일경 열리지 않는 건 확실함. 이상 감실 조 상사 얘기니 틀림없는 듯. 2호의 선생님은 아마 2년 6개월이 될 거요. 항명죄의 내용을 모르니까 거기에 얼마나 더 추가될지는 알 수 없음. 아마도 잘될 거요. 잘되시기를 빈다고 선생님께 전해주시기 바람.

 

강아지 두 마리 보냅니다. 총장에게 한 섬 요구했는데 08만 마시고 배신했소. 다섯 마리 갖다준 거요. 총장 이 새끼 내 사회에 나가면 갈아마실 결심임. 당분간 두 마리로 참고 견디시오. 내일 3호는 한 섬 수입할 계획이 짜졌음. 그건 비밀임. 기대하시라, 지난번 강아지 한 마리 보내주신 이 중사의 의리와 우정 뼛골에 사무침. 건투 앙망.

 

신종술 배상        

 

3호에서-

 

메시지를 읽고 난 정철훈은 벽에 기댄 채 반쯤 누워 있는 중사를 보았다. 중사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정철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이 새꺄, 뭐라고 썼어?

 

중사님, 또 미끄러지셨는데요.

 

뭐? 또 연기됐다구?

 

중사는 벌떡 일어나 앉더니 정철훈의 손에서 거칠게 메시지를 나꾸어챘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메시지를 보고 또 보았다.

 

이 새끼들, 사람 미치게 노는군, 이 새끼들은 바둑 한 판 더 두려구 자꾸 공판을 연기한다구.

 

맥이 풀리는 듯 중사는 멍청한 눈으로 철창을 바라보았다. 2호의 동료들은 숨을 죽이고 중사의 거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지금 잠자코 중사가 비록 우두커니 앉아 있지만 그의 머리는 실망과 분노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분노의 화살이 이번에는 누구에게 날아올까 하고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중사의 화살은 이번에는 그들을 겨냥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부르쥔 주먹을 높이 들어올리더니 퍽 소리가 나도록 시멘트 바닥을 힘껏 두드렸다.

 

좋다구, 내 또 먹어주겠어. 가만히 앉혀놓고 멕여주겠다는 데야 할 말 있나, 야, 오태봉 너 이 새꺄, 이번 토요일엔 내 국에 꽁치 큰 거 넣어달라구 식사당번에게 말해.

 

그는 마치 공판이 연기된 사실을 그것도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즐겁게 키들거리며 떠들어댔다.

 

야 정철훈, 미안하지만 난 너를 좀더 들볶고 나가야겠어.

 

좋습니다, 중사님.

 

정철훈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그는 이미 그것쯤은 각오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공판이 연기되고 또 연기된다는 사실과 설사 공판이 쉽게 열린다 하더라도 막상 이 중사의 형 집행 정지가 결정될는지도 의문이므로 거기에 따라 자기의 즉위도 늦어진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다는 듯이 느긋한 눈길로 중사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았다. 그는 십사 년의 여유를 가진 것이다.

 

이봐요, 당신은 2년 6개월이야.

 

중사는 구겨서 쥐고 있던 메시지를 순열씨에게 내밀었다. 순열씨는 덤덤한 눈길로 중사를 바라볼 뿐 그가 내미는 메시지는 받지 않았다. 그는 3호로부터 강아지가 수입된 뒤부터 갑자기 목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중사가 그의 욕구를 빨리 간파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태우고 싶소?

 

중사는 메시지를 건네다 말고 순열씨의 멍청한 얼굴을 향해 말했다.

 

당신은 내 말을 믿지 않는군. 하지만 종술이의 구형은 어김없다구.

 

당신은 2년 6개월이야.

 

순열씨는 역시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중사의 얘기라든가 또는 3호 데빡의 구형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2라든가 6이라든가 혹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수자라 할지라도 그런 수자에 별달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야. 그 점에서 보면 정철훈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중사의 말마따나 얼마든지 먹어줄 수 있다. 길고긴 세월을 먹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쉽사리 그것을 말하지는 못했다.

 

태우려거든 태워요. 반쯤 태우고 거기 꽂아두쇼.

 

순열씨로부터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가 지금 강아지 생각 때문에 여념이 없다고 판단한 중사는 이윽고 끽연을 권했다. 순열씨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엉거주춤 일어서려다 그만 제물에 주저앉고 말았다. 강아지를 꺼내줄 정철훈이 이때 꼼짝도 않고 앉아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사나운 눈초리가 막 일어서려는 순열씨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던 것이다.

 

중사님, 오늘은 강아지 수입이 더 없을 겁니다.

 

정철훈은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이따 저녁식사 때와 취침 전에는 어떻게 하죠?

 

중사는 정철훈의 주장을 수긍하는 듯 몹시 딱한 얼굴로 순열씨를 돌아보았다.

 

저 새끼 말이 맞아요. 당신도 식사 때와 취침 전에는 더 못 참을 거요. 참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