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열씨에겐 얼핏 떠오르는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그녀가 비록 젊고 예쁘기는 하지만 창부처럼 천박하게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하필이면 변소 문의 안쪽에서 괴로운 사나이들을 유혹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온몸을 발가벗고 꽃이 만개한 모밀밭을 헤치면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열씨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흥, 망측하게 생각 마슈, 그 왜 마누라와 오래 떨어져 있으면 현지 조달이라는 게 있지 않소? 말하자면 그런 거요.
중사님은 참 예쁜 <이것>을 가지고 있군요.
순열씨는 바른손의 새끼손가락을 세워 보이면서 웃었다.
히히히, 예쁘긴 확실히 예쁘죠? 내 본 마누라는 거게 비하면 똥치감밖에 안 돼요, 아차 실수, 난 몹쓸 놈이죠. 내 딸의 엄마에게 이게 무슨 말버릇이야.
이 중사는 자기 주먹을 들어 자기 입을 퍽 소리가 나도록 쳤다. 그는 어이쿠!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 엎어져 한참동안 죽은 듯이 있었다. 중사가 머리를 다시 들었을 때 그의 눈초리는 다시 사납게 돌변해 있었다.
넌 잡았어?
이때 마침 흡연을 마치고 나오는 신참에게 중사는 사나운 어조로 물었다. 유난히 머리통이 큰 이 신참은 불과 며칠 전에 투숙한 가장 신참이었다. 그는 맨 마지막 차례로 변소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뭡니까? 중사님.
신참은 영문을 몰라 몹시 난처한 얼굴로 반문했다.
뭐야, 이 새끼 이만큼 다가와 봐.
신참은 길들인 짐승처럼 순순히 중사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중사는 앉은 채 오른쪽 다리를 들어 이 건강한 짐승의 가슴을 힘껏 걷어찼다.
어이쿠 비명을 지르며 신참은 뒤로 벌렁 넘어졌고 중사는 무슨 대단히 화난 일이라도 있다는 듯 숨을 헐떡거리며 다시 일어서는 신참을 노려보았다.
뭡니까, 라구? 이 새끼 그 말버릇 한번 좋았어. 이 새꺄 잡는 것도 몰라. 너 잡는 것을 깨우칠 때까지 거기 정좌하구 있어. 천명오 너 가서 잡고 와.
천명오는 벌떡 일어나서 휴지를 찾아들고 강아지를 잡기 위해 변소로 들어갔다.
정철훈 넌 이 새꺄. 어떻게 돼먹은 새끼가 감방 질서를 이 모양으로 해놓았어? 넌 신참 교육을 시킨 거야? 난 너를 믿고 네게 일임했는데.
데빡님, 죄송합니다.
정철훈은 얼른 대답하고 일행을 한바탕 노려보았다.
이 새끼들, 난 한방이면 없어. 난 중사님처럼 인정은 두지 않는다구.
그는 굳게 쥔 주먹을 허공에서 한번 휘둘러 보였다. 그의 주먹은 그의 머리통만큼이나 커 보였고 그의 동작은 번개처럼 빨랐다.
이 새꺄, 허풍 좀 작작 떨라구.
중사는 이렇게 말했지만 순열씨는 정철훈이 결코 허풍을 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 정철훈이 신참 교육을 시키느라고 신참을 다루는 광경을 보았다. 정철훈은 앉은 채로 주먹과 다리를 능숙하게 휘둘렀고 그 솜씨는 오히려 중사보다 한층 흉포하고 잔인했다.
정철훈, 요즘 같아서는 내가 나간 뒤에 네놈이 잘할까 걱정이야.
정색을 하고 중사가 말하자, 정철훈은 소리내지 않고 능글맞게 웃었다.
중사님, 염려 마십쇼. 사실 난 이 새끼들 숨통을 꽉 눌러놀 자신이 있죠. 삐딱하는 놈은 벌써 황천으로 날으는 겁니다.
정철훈은 중사의 염려가 한낱 기우에 불과하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때 순열씨는 정철훈이 즉위를 눈앞에 둔 황태자 같이만 보였다. 그는 확실히 데빡의 출감을 어떤 면에서는 데빡 자신보다 더욱 고대하고 있었고 또 즉위에 대비해서 무엇인가 끊임없이 준비하고 벼르고 있었다.
당신은 이를테면 지금 황태자의 신분이군요.
순열씨는 정철훈을 향해 그가 몹시도 부럽다는 어조로 말했다. 정철훈은 순열씨를 힐끗 보았지만 별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새꺄, 넌 출세했어. 네 따위 주제에 황태자가 다 뭐야? 넌 여기 와서 출세했다구. 히히 흐 선생, 이 새끼가 황태자라면, 그럼 난 뭐요?
중사는 재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듯이 주먹으로 순열씨의 허벅다리를 발작하듯이 문질러댔다.
당신 이름은 따로 있어요. 당신은 네로야.
뭐라구? 네로? 흐흐 히.
당신 연기는 기가 막혀요. 중사님 쿠오바디스란 영화를 봤소?
보았죠. 그건 옛날 영화죠? 내가 중학교 때 본 것 같으니까.
그래요. 난 그 영화를 보면서 네로의 연기에 몹시 감탄했죠. 그런데 지금 당신 연기는 그놈을 능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