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선생에게 모욕을 주었어. 이 새끼야, 날 따라 말해. 선생의 구라는, 아니 선생님의 구라는 삼삼합니다.
그래요. 선생님의 구라는 삼삼합니다.
마지못해 모기소리처럼 작은 소리로 정 하사가 복창했다.
이 새끼, 한 대 더 맞아야 알겠어? 기합이 빠져 있어 이 새끼야, 다시. 선생님의 구라는 삼삼합니다.
이번에는 감방 밖에까지 소리가 들릴 만큼 큰소리로 복창했다.
뭐야? 뭐라고 했어?
이때 2호 앞으로 걸어오던 근무자가 철창 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아니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맨 뒤쪽에서 이 중사가 황급히 대답했다. 그는 엉겁결에 몸을 반쯤 일으켰고 그의 얼굴은 어느덧 그 귀여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는 중사와 눈이 마주치자 장 수병님은 하는 수 없이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곧 웃음을 거두고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두꺼운 입술은 굳게 닫혀버렸고 눈을 가릴 듯이 깊이 내려쓴 새하얀 파이버 안쪽에서 표범의 눈 같은 장 수병님의 눈은 지극히 조용한 거동으로 철창 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눈이 나이 먹어 뵈는 맨 뒤쪽의 신참자에서 잠시 정지했다. 그는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몇초 동안 신참자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흥 저놈은 턱수염이 쭈뼛쭈뼛 나고 움폭 팬 눈이 피로하게 뵈는 게 꽤 나이가 많은 게로군. 그런데 저놈의 눈과 마주치면 어쩐지 기분이 거슬린단 말야. 그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으나 정작 그가 이상스레 여기는 건 그 사나이의 그런 외양이 아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2호 앞을 지날 때마다 이 신참자가 두번째 상좌라고 할 수 있는 이 중사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순서로 따진다면 그 녀석은 제가 아무리 나이가 많든 또는 사회에서 쓰여먹는 무슨 대단한 재간을 지녔건 앞자리에 바로 창살과 마주앉아서 참새잡이나 전령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저놈은 자기보다 고참인 여남은 명의 동료들을 죄다 제쳐놓고 두번째 상좌에 앉게 되었을까. 물론 그렇게 결정한 것은 2호 감방장인 이 중사이겠지만 그렇지만 장 수병님은 이 중사로 하여금 감방 질서를 깨뜨리게 만든 이 사나이에게 약간의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튼 2호는 재미있어.
그는 무슨 뜻인지 2호 사람들이 잘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지껄이고는 1호 쪽으로 걸어갔다.
작살날 뻔했어. 이 새꺄.
2호 앞에서 장 수병님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이 중사가 정 하사의 뒷덜미를 향해 말했다.
그래요. 중사님.
여전히 앞을 향한 채 정 하사가 대꾸했다. 그가 구태여 대꾸하는 것은 이 중사의 임기웅변이 위기를 모면케 해주었다는 것을 덩달아 표시해주기 위해서였다.
아까 두 번째 복창은 좋았어.
이번에는 정 하사에게만 들릴 만큼 속삭이듯 이 중사가 말했다.
이따가 취침 전에 선생님께 강아지 한 마리 드려.
네. 드리겠습니다.
정 하사의 대답이 끝나자, 중사는 옆자리의 순열씨를 힐끗 돌아다보았다. 순열씨가 그를 마주보았을 때 그는 그 귀여운 웃음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순열씨는 딱딱한 표정으로 그의 미소를 받았다. 그러고는 얼른 정면으로 머리를 돌리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적어도 아직 이 중사의 흉내를 낼 수는 없다고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 중사의 미소나 고개 움직임, 손짓 발짓, 혹은 기분 내킬 때 한 두어 마디 내뱉는 따위의 여유를 그는 도저히 흉내 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비록 두 번째 상좌에 앉아 있지만 그는 매우 조심했다. 왜냐하면 이 중사가 상좌를 차지한 것과 자기가 두 번째 상좌를 차지한 것은 그만큼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그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좌 시간에 부주의한 행동을 하면 그것은 곧 같은 호의 동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부주의는 모두가 용납하지 않았다. 단지 이 중사만이 호 자체의 그러한 규제 밖에 있었다.
순열씨의 상체는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다리 근육은 이따금 생각난 듯이 꿈틀거렸다. 그는 무릎을 꿇은 지 삼십 분도 채 못 가서 발과 다리의 마디 사이에 힘줄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그 통증을 한참 견디어내자 이번에는 허벅지에 무겁게 짓눌리고 있는 다리 근육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 통증에 반항하듯 시멘트 바닥에 깔려 있는 다리를 향해 상체의 압력을 더욱 가중했다. 유월 초순, 아직 여름 무더위는 아니지만 사방이 차단된 실내는 몹시 무덥기만 했다.
이렇게 힘을 주어보면 발과 다리 사이 마디의 힘줄이 늘어나고 말겠지. 그리고 다리 근육도 한층 딴딴해질 게다.
그것은 꼭 그렇게 될는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통을 참아내는 별다른 길도 없었다.
오태봉, 넌 감실에 갔다온 게 며칠째야?
예, 보름 조금 덜됐습니다.
이 새꺄, 보름이면 보름이고 한 달이면 한 달이지 좀 덜됐다는 게 뭐야?
이 중사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철창 가까이 벽에 기대앉았던 오태봉은 얼른 상체를 바로 세우고 평좌로 고쳐 앉았다.
예, 만 십삼 일 열두 시간 되었습니다.
좋았어, 오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