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어쩌면 환자가 아닐까 하는 자각 증상에 사로잡히고 만 것입니다. 혹시 어디 아픈 데라도 없을까. 그때까지 몸에 이상이 있거나 이렇다 할 만큼 치료를 받아본 일이 없는데도 공연한 남들의 인사말,

 

요즘 어디 아프냐?

 

혹은.

 

자넨 밤낮 무슨 걱정거리가 그다지도 많은가?

 

이따위 인사말 때문에 자기는 정말 환자가 아닐까 하고 자꾸 자문해보다가 나중에는 자기 몸 어느 한 부분이, 아니면 거의 전체가 병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도 없는 의구심에 사로잡혀버렸지요.

 

게다가 자기가 남달리 걱정거리가 많은 사내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공연히 시달림을 받고 있는 사나이다, 하고 느끼는 증상은 더욱 심했죠. 웬만하면 표면에까지 드러내지 않아도 될 텐데, 자기 고민을 표면에까지 드러내는 건 어느 모로 보나 유쾌하달 수 없는 일인데 오죽하면 그걸 상대방이 금방 깨닫게 될까, 내 표정에서 그것을 감추고 지낼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죠.

 

이 증상은 가속되어 이윽고는.

 

나는 병든 사나이다.

 

혹은.

 

나는 남달리 걱정거리가 많고 그리고 그것을 감출 수 없으리만큼 거기에 몹시 시달리고 있는 사나이다.

 

라고 스스로 규정지어놓고는 매사에 자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여보. 그게 연애 이야기요?

 

맞은편 벽에 기대앉은 하사 하나가 이때 퉁명스레 물었다. 순열씨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들어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야기를 가로막은 하사는 변소 바로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는 너에게 기대고 있다, 기댈 만큼 기댈 테니 양해하라는 듯이 변소 옆 벽에 잔뜩 기댄 채 얼굴 윤곽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머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순열씨에게는 하사의 이마밖엔 보이지 않았고 그의 이마는 온통 굵다랗고 깊이 패인 주름투성이여서 순열씨의 시야에는 그 뚜렷한 주름살이 더욱 크게 부풀어올랐다.

 

저 사나이는 지금 왜 변소 곁에 앉아 있을까. 순열씨는 그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저곳은 그의 자리가 아니다. 순열씨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는 유독 혼자 몇자만큼 떨어져 앉아 있었고, 아주 편한 자세로 벽에 기댄 채로 머리를 잔뜩 수그리고 있는 걸 보면 하사가 지금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는 것은 물론 방금 질문을 던져온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질문의 목소리는 분명히 그의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는 저만큼 혼자 떨어져 앉아 있을까. 그는 혼자서 잠을 자고 있었거나 혹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왜 저기 변소 바로 옆에 앉아 있을까. 저곳은 그의 자리가 아니다.

 

순열씨는 입을 닫은 잠깐 사이에 맞은편에 앉아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하사에게 이렇게 머리를 썼다. 그는 약간 불안하기까지 했고 눈을 들어 다시 그 부풀어오르는 굵다란 주름살을 보았을 때 까닭 없는 불안은 더 심해졌다.

 

계속해요. 그냥.

 

이때 이 중사가 손으로 순열씨의 잔등을 가볍게 치면서 재촉했다. 그가 구태여 잔등까지 치는 걸 보면 이 중사는 벌써 순열씨의 마음에 스쳐가는 한 가닥의 불안을 읽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는 고참자답게 눈치가 매우 빠른 사나이였다.

 

비록 늘 눈을 가늘게 치뜨고 입을 지랄병자처럼 약간 헤 벌리고 있어서 이자가 잠자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느낌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중사의 얼굴에 밴 습관에 불과한 것이고 그는 잠을 자고 있거나 혹은 어떤 잡념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반수에 빠진 듯한 그의 눈과 그리고 여타 촉각은 실내의 구석구석까지, 또는 실내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 구석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되지 못했고 중사의 눈치는 이미 귀기(鬼氣)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리라.

 

만약에 이때 중사가 손으로 자기의 잔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재촉하지 않았다면 순열씨는 맞은편 하사의 이마에 너무나도 뚜렷하게 혹은 사나우리만큼 굵다란 선으로 그어져 있는 주름살로부터 그의 멍청스런 시선을 거두지 못했을 게다. 그는 확실히 한 가닥의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아 한동안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중사의 가벼운 손길에는,

 

그 따위에 개의치 마시오.

 

라는 뜻이 분명 담겨져 있어서 그는 겨우 하사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중사는 순열씨를 껴안기라도 할 듯이 한쪽 무릎은 그의 무릎 밑에 밀어넣고 한쪽 무릎은 세워서 그의 잔등을 받쳐주고 있었다. 무엇을 받아먹기라도 하려는 듯이 앞으로 내어민 중사의 뾰족한 턱은 곧 그의 턱과 마주칠 것처럼 가까이 있었고 중사의 입에서 훅훅 내어뿜는 뜨거운 숨결에서는 고약스런 냄새가 자꾸 스며나와 그의 후각을 괴롭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여남은 명이나 되는 한방의 동료들도 순열씨와 중사를 둘러싸고 덩어리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도 한결 같이 뜨거운 숨결이 내뿜어졌고 그리고 그 숨결에는 모두 순열씨의 후각을 괴롭히는 고약스런 냄새가 스며나왔다. 그들의 냄새는 한결같이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개고기를 구운 것 같은 약간 노린내에다 썩은 푸성귀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섞여 있는 냄새, 그러니까 그것은 거리의 싸구려 음식점 주변의 하수구에서 맡을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냄새였다.

 

순열씨는 그 특유한 고약스런 냄새들로 자기가 겹겹이 에워싸여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그들의 눈이 자기의 입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으며 그들의 가쁜 숨결이 그들이 지금 매우 초조하게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믿어졌으므로 이야기를 계속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