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떻게 된 거요?

 

중사가 성급하게 재촉했다. 그는 거의 입이라도 맞출 듯이 순열씨의 얼굴에 그의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그런 뒤에!

 

하고 순열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때 관망대에서 귀찮아 내뱉는 듯한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정좌.

 

관망대의 난간에 어깨를 기대고 졸고 있던 근무자는 몸을 일으키고 드높은 천정을 향해 한바탕 기지개를 켠 뒤에 방금 내린 자기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었나 보느라고 눈으로 한 바퀴 반원을 그렸다. 새하얀 파이버 밑에 가려진 그의 눈은 표범 눈처럼 반짝거렸다. 그리고 독기마저 내뿜고 있었다. 방금 조느라고 게슴츠레했던 눈이 어느 사이 그렇게 빛과 독기를 한꺼번에 뿜어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순열씨는 이야기를 더 계속하지 못했다. 근무자의 작은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순열씨를 둘러싸고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허둥허둥 제자리를 찾아 순식간에 흩어져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순열씨의 곁에 남은 사람은 겨우 이 중사 한 사람뿐이었다. 그곳은 그의 자리였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중단한 순열씨는 그의 얘기에 귀기울여주고 있던 2호 감방의 동료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가 조금 이야기의 템포를 빨리했더라면 근무자의 지시가 내리기 전에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늦어진 것은 그가 이야기를 충실하게 끌어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편히쉬어 자세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도무지 불가능했다. 그나마도 맨 앞에 앉아서 참새잡는 당번이 끊임없이 근무자의 거동을 지켜보아야 했고 거기다가 어느 정도까지는 재소자의 수칙이나 근무자의 권위로부터 이탈해보겠다는 이 중사의 대담한 배짱이 밑받침하고 있었다.

 

순열씨는 계면쩍은 표정이 되어 꼼짝도 하지 않는 동료들의 중머리 뒤통수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는 이 중사와 나란히 맨 뒤에 앉아 있었으므로 이 위치에서는 삼열 횡대로 정좌하고 앉아 있는 동료들의 중머리 뒤통수들이 모두 한눈에 바라다보였다. 그들의 중머리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으므로 뒤쪽에서 보면 마치 여러개의 같은 석불상이나 목불상들을 나란히 앉혀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불상들은 실은 생명이 전혀 없어 뵈는 것이다. 정좌할 때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뒷모양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는 듯이 보였고, 꼼짝도 하지 않는 삼열 횡대의 뒤통수들에서는 정말 생명의 자취라곤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이렇게 느껴질 때 순열씨는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내 얘긴 그년을 어떻게 조졌느냐 이거요.

 

이때 이 중사가 2호실 안에서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순열씨를 슬쩍 돌아보면서 말했으나 그 귀여운 웃음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의 표정은 정좌할 때 그가 늘 그러듯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렇게 굳은 표정으로 중사가 말하는 것은 그가 참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중사의 참말에 대해 실내에서는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웃을 만한 시간이 아닌 데다가 그보다도 이 중사의 참말은 그들에게도 역시 참말이었던 것이다.

 

근무자는 관망대에서 내려와 동물원의 우리처럼 반원으로 늘어선 감방 앞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복도의 시멘트 바닥에 군화가 부딪치는 발자국 소리는 마치 초를 헤아리는 시계추 소리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또렷하게 들려왔다.

 

하여튼 박씨의 구라는 삼삼해. 놀랐어.

 

마침 발자국 소리가 7호, 8호 쪽으로 멀어져간 사이에 중사가 말했다. 그러자 중사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정 하사가 불쑥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게 삼삼하다구요? 난 통 싱거워서 못 듣겠는데.

 

강 하사는 순열씨의 구라 솜씨를 칭찬하는 이 중사의 말에 화가 나서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버럭 소리쳤다. 그는 뒤쪽의 두 사람을 부릅뜬 눈으로 한바탕 흘겨보고는 곧 다시 얼굴을 앞으로 돌렸다.

 

뭐라구? 이 새끼가 갑자기 미쳤어.

 

이 중사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의 큰 주먹이 하사의 뒤통수를 맹렬하게 갈겼다. 하사의 머리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방금 자기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곧 깨달은 듯 꼼짝도 안했다.

 

이 새끼.

 

중사는 노기로 숨가쁜 소리를 내면서 자기 말을 부정한 인간에게 같은 주먹질 몇번인가 되풀이했다.

 

이 새끼, 그 소리 다시 한번 해봐.

 

근무자의 발소리가 멀어졌을 때 중사가 나지막한 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의 어조에는 어느덧 노기가 사라졌고 비양거리는 투의 장난기마저 섞여 있었다.

 

한차례 주먹 세례를 받은 정 하사는 여전히 꼼짝 않고 등을 보인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참아내는 그는 누구보다 중사의 발작적인 노여움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중사의 주먹질이 몇 번으로 그친 것을 도리어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