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사는 빙그레 웃는 얼굴로 좌중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자 오태봉은 아주 날렵한 동작으로 평좌를 흐트리고는 다시 벽에 기대앉아 싱글싱글 웃기 시작했다. 그는 특별한 긴장이 없을 때는 늘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넌 며칠이면 공판이 붙겠다. 씨팔 놈, 좋아라 날뛰지 마, 삼년은 썩어야 하니까.

 

그렇지 않아요. 난 이년 잡구 있어요.

 

온통 주근깨로 덮여 있는 오 하사의 조그만 얼굴은 상대방의 약을 올리려는 듯이 여전히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그의 밝은 표정에는 이년은 견딜만하다. 이년을 때린다면 즐겁게 살아주겠다라고 씌어 있는 것 같았다.

 

뭐라구 이 새꺄, 이년이라구. 새씹 같은 소리 작작해다구 이 새꺄, 넌 기름칠 이년 아냐? 기름칠 이년이면 갈데없는 석삼자라구, 그렇지 않나, 정철훈?

 

중사가 옆에 다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정 하사에게 동의를 구하자 하사는 얼른 자세를 바로잡고 평좌로 고쳐 앉았다.

 

네, 그렇습죠.

 

그봐, 이 새꺄, 오태봉, 너 똑똑히 들었지?

 

중사님, 악담 좀 그만하세요. 그래 삼년이라구 해두죠.

 

오태봉은 마지못해 감방장의 구형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이 중사는 오태봉이 방금 악담 운운했기 때문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 녀석에게 당장 게걸음을 시킬까 하고 생각했다. 그의 앞으로 게걸음걸이로 오태봉이 다가오면 바른쪽 다리를 들어 발바닥으로 놈의 얼굴을 한번 씻겨주는 순서였다. 그러나 그의 찌푸린 얼굴에 개의치 않고 연방 싱글거리는 오태봉의 주근깨투성이 얼굴을 보자 그는 그 순서를 지워버렸다.

 

아아 씨팔 미치겠구나 선생, 난 이제 이십 일만 참아내면 나가는 거요.

 

그래요?

 

하고 순열씨는 다소 놀란 듯 중사를 바라보았다.

 

여태 몰랐죠? 이십 일만 있으면 이심 공판이 있으니까 그때 붙으면 나가는 거요.

 

거기에 확실히 붙는다는 걸 알고 있소?

 

알구 말구요, 흥 이번에는 진짜 08을 쓴 거요. 08을 썼으니까 틀림없다는 걸 알지요. 이년 육 개월이나 08을 쓰지 않고 버티다가 이번에는 정말 쓴 거요. 엣다 먹어라 하고 일심에서 난 3년이었는데, 씨팔 이년 육 개월이나 살았지만 정말 이제 육 개월은 더 못 견디겠소. 꼭 미칠 것 같은 거요, 선생.

 

하고 중사는 점점 어조를 낮추어가며 말했다. 나중에는 순열씨만 들릴 만큼 작은 소리로,

 

선생, 정말 이제 육 개월을 살라면 어디로든 도망가겠소. 죽고 말지 못 견딜 판요. 전에 삼년 형기가 다 끝나 내일이면 출감할 놈이 그만 하루를 못 참아 탈옥한 일이 있다우. 저 변소 말요. 변소 천정으로 올라가 굴뚝으로 빠졌다우. 지독한 놈이지만 삼일 뒤에 다시 체포되어 여기로 돌아왔죠. 그래서 특수도주 죄명으로 사년을 또 받은 거요.

 

흐흐 우습죠. 그놈을 욕했지만 이제야 그놈의 심정을 알 것 같아요. …그래서 2심에 항소해놓고 내가 아버지에게 편지한 거요. 쓰라구. 내가 쓰라구 했으니까 꼭 썼을 겁니다. 전에는 아버지가 쓰겠다구 해두 내가 못쓰게 했으니까.

 

어쨌든 다행이요. 이십 일은 눈깜짝할 사이 아뇨? 당신은 이제 괴로울 것 하나도 없겠소.

 

그게 아니오, 선생. 바로 이 좆같은 이십 일이 문제라니까. 하루가 꼭 일년 같다니까.

 

중사는 금방 사나운 눈초리로 철창을 노려보았다.

 

노오랗게 변색된 얼굴이 일단 흥분되자 옆에 앉은 순열씨에게는 그가 한 마리의 늑대같이 보였다. 중사는 굳게 잠겨 있는 철창의 문과 높다란 삼면의 벽을, 거의 세 해 동안이나 묵묵히 자기를 감금하고 압박해온 삼면의 벽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에이 더럽다 씨팔, 모든 게 개씹 같단 말야. 야 천 하사, 나 외출하겠어.

 

말이 떨어지자 오른편 3열에 앉아 있던 천 하사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2호에서 제일 당당한 체격을 가졌고 제일 말이 적은 사나이였다. 그는 잘 길들여진 소처럼 벌써부터 등을 약간 구부리고 후면 벽 쪽으로 어정어정 걸어갔다. 이 중사는 외출하기 위해 일어섰고 순열씨도 천 하사가 설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일어섰다.

 

천명오는 고릴라의 손같이 큰 손으로 깍지를 끼고 후면의 통풍구에 각도를 맞추어 자리잡고 섰다.

 

니기미, 오랜만의 외출인가 부다.

 

힘을 내기 위해 기합을 준 듯 중사는 말하고 천명오의 큰 손깍지에 오른발을 얹었다. 동시에 그는 손으로 천명오의 어깨를 짚고 훌쩍 올라섰고 다시 같은 동작을 거듭하자 어느덧 중사는 천명오의 어깨를 밟고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솜씨가 체조선수같이 민활한 데 순열씨는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