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쪽 구석에는 악단이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래요? 악단이 올 예정입니까?"

다른 일꾼 한 사람이 말했다. 얼굴이 창백하고 눈자위에 그늘이 앉은 남자였다. 그 눈으로 테니스 코트를 살펴보는 모습이 어딘지 초조해 보였다.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아주 규모가 작은 악단이에요."

로라는 조용히 말했다. 악단이 큰가 작은가 하는 문제는 이 남자에게 관심 밖의 일일 것이다. 그때 키 큰 남자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아가씨, 저기가 어떻습니까? 저기 저 나무 앞 말입니다. 저기라면 아주 적당한데요."

그는 지금 카라카 나무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카라카 나무가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된다.

넓고 반짝거리는 잎사귀를 가진 나무였다.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저렇게 아름다운 나무인데… 황량한 외딴 섬에 혼자서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 같다. 잎과 열매를 햇빛에 드러내면서 이른바 눈부신 고요 속에 서 있다는 느낌을 주는 나무였다. 저런 나무를 천막 때문에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없지!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남자들은 이미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그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키 큰 남자만 혼자 뒤에 남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자그마한 라벤더 가지를 집어들더니 손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코에 갖다 대고 그 냄새를 맡았다.

로라는 그의 행동을 보면서 카라카 나무 따위는 그만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 것 - 라벤더 냄새에 마음을 쓸 수 있는 남자에게 그만 감동해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도대체 몇 사람이나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

아아, 이 일꾼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같이 춤을 추기도 하고, 일요일 밤에 집으로 와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는 저 멍청한 남자 친구들보다 이런 일꾼을 친구로 삼는 게 훨씬 나을 거야… 이런 사람들하고는 훨씬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련만!

이 모든 게 다 말도 안 되는 계급 차별 때문이야. 그녀는 이렇게 판단했다. 키 큰 남자는 봉투 뒤에 무언가 계속 그리고 있었다. 둥글게 매듭을 짓던가 아니면 그대로 늘어뜨려 놓을 것인가 하는 작업 계획이었다. 그녀는 그러한 동작에서 계급의 차이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그런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 정말 눈곱만큼도 없다… 그때 쿵쿵 뭔가 두드리는 나무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사람은 휘파람을 불고 어떤 사람은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쪽은 어때, 형제?"

형제라니! 얼마나 다정한 말인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로라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그들을 얼마나 흉허물없이 느끼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산이 하찮은 인습 따위는 마음껏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그 키 큰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로라는 그 작은 봉투에 그려진 것을 바라보면서 버터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도 노동 계급의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로라, 로라야, 어디 있니? 전화가 왔다, 로라!"

집안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곧 갈께요."

그녀는 경쾌하게 잔디를 뛰어넘고, 계단을 올라, 베란다를 가로질러 현관으로 들어갔다. 현관 홀에서는 아버지와 로리가 사무실에 나갈 준비를 하느라고 솔로 모자를 털고 있었다.

"이봐, 로라."

로리가 빠르게 말했다.

"점심 때까지는 내 윗도리 주름을 좀 폈으면 좋겠는데… 좀 봐 주지 않을래? 다림질을 해야 할지 어떨지 좀 봐 줘."

"그래, 알았어."

그녀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갑자기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어서 로리에게 뛰어들어 재빨리 그를 끌어안았다.

"난 정말 파티가 좋아. 그렇지 않아, 오빠?"

로라는 숨이 차서 말했다.

"그럼, 좋구말구!"

로리 역시 따뜻하고 앳된 목소리로 말하면서 또한 동생을 꽉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를 살짝 떼어놓았다.

"자, 어서 가서 전화를 받아야지."

맞아, 전화가 왔다고 그랬지, 참.

"그래, 그래, 키티구나, 잘 있었어? 점심식사 때에 오지 않겠니? 그래, 오렴. 물론 네가 오면 좋지. 뭐 그냥 이것저것 있는대로 만든 식사야. 샌드위치 몇 조각이랑, 메링과자 조각들이 남아 있어. 그래, 정말 오늘 아침은 어쩜 이렇게 날씨가 좋을까? 너 흰 옷을 입고 올 거니? 응, 응, 나도 꼭 그렇게 할 거야. 잠깐만 기다려 - 끊지 말고. 지금 엄마가 부르고 계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