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로라야, 절대로…"
"무슨 얘기예요, 엄마?"
"아니, 이런 얘기는 너희 같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들려주지 않는 게 좋겠어. 아무 것도 아니다. 빨랑 다녀와야 한다."
로라가 밖으로 나가 정원의 문을 닫았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커다란 개가 그림자처럼 달려갔다. 길게 뻗은 길은 하얗게 빛나고 아래 우묵한 곳에 작고 엉성한 집들이 어두운 그림자를 이루어 모여 있었다. 오후의 파티 다음에 찾아오는 적막한 느낌이 깊고 깊었다.
'나는 지금부터 언덕을 내려가서 죽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어쩐지 그것이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그녀는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아직도 그녀의 몸에는 사람들이 해준 키스, 떠들어대는 목소리, 스푼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웃음소리, 발에 밟힌 풀 냄새 따위가 짙게 배어 있는 느낌이었다. 다른 것이 여기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녀는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에는 '정말 멋진 파티였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큰길을 가로질렀다. 어두침침한 샛길로 접어들자 공기가 매캐하고 더 어두운 것 같았다. 어깨에 숄을 걸친 여인과 스코트 천 모자를 쓴 남자들이 바쁘게 걷고 있었다. 어떤 남자들은 계단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었고, 아이들은 문 밖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비좁고 누추한 움막 같은 집에서 사람들이 낮게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집에는 등불이 가물거리고, 사람의 그림자가 마치 게처럼 창가에 어른거렸다.
로라는 고개를 숙인 채 급히 그곳을 지나갔다. 그녀는 '코트를 입고 왔으면 좋았을 걸'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랬으면 내 옷이 얼마나 더 멋지게 보일 것인가. 거기에 빌로드 리본이 달린 그 큰 모자 - 그것을 썼더라면 더욱 좋았을 거야. 이 사람들은 지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그래, 틀림없이 보고 있을 것이다. 여기 온 것이 잘못이었어…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집이 그 집인 것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대문 밖에는 사람들이 검은 그림자를 이루며 모여 있었다. 문 옆에 꼬부라진 할머니 한 사람이 소나무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신문지를 깔고 거기 발을 얹어 놓고 있었다. 로라가 가까이 가자, 사람들의 말소리가 그쳤다. 사람들은 재빨리 길을 터주었다. 마치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로라는 마음이 몹시 조마조마했다. 빌로드 리본을 어깨 위로 활기차게 젖히면서 그녀는 옆에 서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이 집이 스코트 씨 댁인가요?"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띠며 "네, 그래요. 아가씨" 하고 말했다.
아아, 여기서 빨리 도망치고 싶다. 그녀는 문 안으로 쭉 이어진 뜰안 길을 걸어가 문을 두드리며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소리내어 말했다. 이상스럽게 훑어보는 이 사람들의 눈초리에서 도망치고 싶다. 어디건, 이 여인들의 숄 아래라도 좋으니 숨어버리고 싶었다. '바구니만 전해주면 금방 돌아가야지' 그녀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바구니를 열어볼 때까지 기다릴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검은 상복을 입은 몸집이 작은 여자가 침침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로라는 "스코트 씨 부인이세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자는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말했다.
"자, 아가씨 어서 들어오세요."
그리고 로라를 안으로 안내는 그녀는 좁은 복도에 갇히고 말았다.
"아니 괜찮아요. 안에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다만 이 바구니만 전해드리면 되거든요. 저희 엄마가 보내셔서…"
그러나 어두운 복도에 서 있던 몸집이 작은 그 여인은 이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녀의 부드러운 말투 때문에 로라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는 희미한 등불이 비치고 있는, 지저분하고 천정이 낮은 좁은 부엌에 들어와 있었다. 난로 앞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엠마."
로라를 안내한 작은 몸집의 여인이 말했다.
"엠마! 아가씨가 왔어."
몸집이 작은 여인이 로라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의미 심장하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 애의 언니 되는 사람입니다. 저 애의 실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괜찮아요… 저는, 저는 그냥 이것을 전하러 왔을 뿐이니까요…"
그때 난로 앞에 있던 여인이 몸을 휙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벌겋게 부어 있었다. 눈이나 입술 등이 부르터 있어 보기에도 무서웠다. 그녀는 로라가 어째서 그곳에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무슨 까닭일까. 도대체 무슨 일로 이 낯선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 부엌에 서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