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상관없습니다. 제 마음은 이미 다 정해졌으니까요. 저는 지난날의 자만심을 몽땅 다 버리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을 어머니 뜻대로 해주세요. 저는 그저 어머니 말씀을 따를 뿐입니다. 장차 제 아이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께 순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도 비로소 제 결심이 헛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난 지금도 너의 결심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단다. 그런데 얘야, 네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단다. 꼭 네가 보살펴 줘야 할 얘가 있단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동생 말이다. 네가 집을 떠날 때는 아직 열 살도 안 됐었지. 너는 그때 그 애에게 전혀 관심도 두지 않았었고… 그런데 그 애가…"

"어머니, 어서 말씀하세요.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지금 그 애를 보면 마치 집 떠나기 전의 네 모습을 보는 것 같을 거야. 그 애는 지금 집을 나가기 전 네 모습과 꼭 같단다."

"저하고 같다구요?"

"집을 나서지 전의 네 모습 말이야. 지금의 네 모습이 아니라…"

"그렇다면 아마 그 애도 다시 저처럼 되겠군요."

"당장 그 애 마음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그 애와 좀 얘기해볼 수 없겠니? 너의 말은 귀담아 들을지도 모르겠구나. 네가 여행 중 겪었던 일들을 낱낱이 다 이야기해 주려무나. 너처럼 쓸 데 없는 고생을 하지 않도록 말이야."

"어머니는 왜 그렇게 동생에 대해 염려하고 계십니까? 그저 겉모습만 보시고 그렇게 판단하시는 것 아닌가요?"

"아니야, 그렇지 않다. 그 애는 너와 닮은 점이 너무 많단다. 너의 경우에는 아예 모르고 신경을 별로 쓰지 못했지만 지금 그 애는 무척 염려가 된다. 걱정스러운 모습이 너무 많이 눈에 띈다. 우선 그 애는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 그리고 그 책들이 언제나 좋은 책들만 있는 것 같지는 않더구나…"

"그저 그것뿐인가요?"

"그 앤 종종 근처 동산의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곤 한단다. 너도 잘 알겠지. 그곳에서는 사방 천지가 멀리까지 다 보이지 않더냐?"

"저도 그 기억이 나는군요. 어머니, 그리고 또…"

"그 애는 집에 있는 것보다 농장에 나가서 노는 일이 더 많더구나."

"거기서 걔가 무얼 하는지 아세요?"

"물론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애가 거기서 우리 소작인들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는 아주 질이 다른 불량배들까지 만나고 있어! 그들은 이 지방 사람도 아닌데다 그중 한 사람은 그 애에게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눈치더라."

"아, 그 돼지 치는 친구를 말씀하시는 모양이군요."

"그래, 맞았다. 너도 그 사람을 알고 있구나! 네 동생은 저녁마다 그를 만나서 돼지우리까지 따라간단다. 그 사람 얘기를 들으려고 말이야! 그리고 저녁식사 때나 되어서야 간신히 집에 돌아와서는 밥도 제대로 먹질 않거든. 그 옷에선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말이야.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고, 오히려 반항만 늘어가니… 하루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 시간에 그 녀석을 좇아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겠니! 먹이를 주려고 돼지 떼를 몰고 나가는 그런 시간에 말이다."

"그 애도 그런 데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겠어요?"

"너도 그것은 알고 있지 않았니? 그 애도 어느 때인가 집에서 뛰쳐나갈 거야. 나는 그걸 분명히 알 수 있어. 언젠가는 그 애가 집에서 뛰쳐나갈 것이라는 것을…"

"아니에요,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그 애를 한 번 타일러 보겠어요. 그러니 어머니, 너무 염려 마세요."

"그 애도 아마 네 말이라면 귀담아 들을 거야. 나도 그건 알 수 있지. 네가 돌아온 그날 저녁에 그 애가 너를 얼마나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넌 잘 몰랐을 거야. 네가 입고 있던 그 누더기 옷이 얼마나 시선을 잡아 끌었는지! 네 아버지가 곧 너에게 비단 옷을 입혀 주었지. 네가 입은 그 두 가지 옷을 그 애가 서로 혼동하지나 않았을까 나는 걱정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그런 생각조차도 우습게 여겨진단다. 왜냐 하면 지금 생각해보니 분명히 알 수 있는데… 그 애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네가 입었던 그 누더기 옷이었기 때문이지. 얘야, 만약 네가 그렇게 비참한 몰골이 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너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니?"

"어머니! 어떻게 제가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있었는지, 지금은 저 자신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 애에게 그런 얘기를 하나도 빼지 말고 다 들려주려무나."

"네, 내일 저녁엔 그 애에게 제가 아는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겠습니다. 어머니, 이젠 졸립군요. 제 이마에 키스해 주세요. 마치 제가 어려서 잠들어 있을 때 해주시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 이제 돌아가 자려무나, 나는 너희들을 위해 기도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