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사실 형님이 하려는 얘기는 그런 게 아닐 겁니다. 형님은 결국 정복자가 되고 싶은 커다란 꿈을 품고 떠났던 것 아닌가요, 맞죠?"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노예 생활이 더욱 뼈저렸다."

"형님은 도대체 왜 굴복하신 겁니까? 형님은 그토록 지쳤던가요?"

"아니다.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지쳤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품었던 생각을 결국 의심하게 되었단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말 모르겠군요."

"나는 모든 것을 회의하게 되었다. 하다못해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었지.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아무 데나 몸을 의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미끼를 던지며 나에게 안락한 생활을 주마고 약속한 주인의 꼬임에 넘어가기도 했다. 결국 이제 와서야 내가 시도했던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탕자는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하지만 집을 떠난 처음에는 어땠나요?"

"나는 오랫동안 황무지를 방황했단다."

"황야를 떠돌았던 겁니까?"

"꼭 황야를 헤맸던 것만은 아니다."

"형님은 거기서 도대체 무엇을 찾아 다녔습니까?"

"이제 와서는 나 스스로도 내가 무엇을 찾아 헤맸던지 잘 모르겠구나…"

"이제 그만 침대에서 일어나세요. 그리고 여기 제 머리맡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보세요. 찢어진 책 위에 있는 것 말이에요."

"벌어진 석류로구나…"

"돼지 치는 사람이 사흘 동안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어제 저녁에 저걸 나에게 주더군요."

"나도 저건 안다, 저건 야생 석류아."

"그래요. 맛이 지독하게 쓰지요. 하지만 정말 목이 마르면 저런 것이라도 마구 깨물어 먹을 것 같아요."

"너도 이제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것 같구나. 황야에서 내가 찾고 있던 것은 바로 네가 말하는 그런 갈증이었다."

"이 열매는 전혀 달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목을 축일 수는 있겠죠?"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갈증을 더할 뿐이다."

"형님은 이 석류를 어디서 딸 수 있는지도 잘 아시겠군요?"

"보살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초라한 과수원이지… 울타리가 없어서 그냥 황야인지 과수원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곳이란다. 한쪽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익다가 만 열매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었지."

"무슨 열매들이었나요?"

"우리 집 뜰에 있는 과일과 비슷한 것들이야.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야생이란 점이 다르지. 내가 그곳을 찾은 날은 몹시 무더웠단다."

"형님,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제가 오늘 왜 형님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세요? 저는 이 밤이 새기 전에 집을 떠날 생각이에요. 밤이 밝고 사방이 어스름하게 밝아오면… 저는 조용히 집을 나가 길을 떠날 거에요. 그래서 오늘밤은 신발도 벗지 않고 있어요."

"뭐라고? 나도 이루지 못한 것을 네가 이루어보겠다는 얘기냐?"

"형님은 제게 길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리고 저는 형님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이겨나갈 거예요."

"너에게 정말 놀랄 수밖에 없구나… 하지만 이제부터 너는 나를 잊어야 한다. 그래 무엇을 갖고 가는 거냐?"

"저는 막내아들이에요. 그러니 유산 따위를 나눠달라고 할 수도 없죠. 그건 형님도 잘 아실 텐데요? 그래서 저는 맨주먹으로 떠납니다."

"오히려 그게 더 나을 거다."

"그런데 창밖으로 무얼 보고 계신 겁니까?"

"우리 조상들이 누워 계신 땅, 그곳 말이다…"

"형님!"

소년은 침대에서 일어나 탕자의 목을 껴안았다. 그의 목소리처럼 그의 팔도 아직 부드러웠다.

"우리 지금 함께 떠나자구요."

"나는 이제 그만 내버려두렴! 나는 이제 집에 남아서 너 때문에 상심하실 어머니를 위로해드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없어야 너는 더욱 용감해질 수 있을 거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구나. 사방이 밝아오지 않으냐? 이젠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해라. 얘, 이리 와서 나를 안아다오.

너는 나의 모든 희망을 짊어지고 가는 거야. 부디 용기를 갖고, 집에 남은 사람은 잊어버려라. 나도 너를 잊어버리마. 부디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해라. 나갈 때는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걸어라. 내가 등을 밝혀 주마."

"대문까지 바래다주세요."

"현관 계단을 내려갈 때 조심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