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람의 목숨이란 길어야 100년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질고 어리석고 귀하고 천하고를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알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알몸으로 저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이른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이같이 헛된 것인 줄 알면서 사람들은 왜 허욕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며, 악한 일을 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요? 나중에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일 천주님의 상벌도 없고, 또한 영혼도 역시 몸이 죽을 때에 같이 없어진다면 잠깐 머물다 가는 이 세상에서 잠깐 부귀영화를 누려볼 만도 합니다. 그러나 영혼이란 결코 죽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천주님이 지극히 높은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도 불을 보는 것처럼 명확한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부귀영화는 한낱 덧없는 것일 뿐입니다)
옛날 중국의 요(堯) 임금은 “저 흰 구름을 타고 하느님이 사는 곳에 이르기만 한다면, 달리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우(禹) 임금은 “삶이란 붙어 있는 것이요, 죽음이란 돌아가는 것이다” 또한 “혼은 올라가는 것이요, 넋은 내려가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다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뚜렷한 증거가 되는 것들입니다.
만일 사람이 천주님의 천당과 지옥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유복자가 아버지를 못 보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안 믿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장님이 하늘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하늘에 해가 있다는 사실을 안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 화려한 주택을 보면서 그 집을 지을 때 못 보았다고 해서 그 집을 지은 목수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저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별들과 같은 넓고 큰 것, 날고 달리는 동물들, 온갖 식물들, 기기묘묘한 만물이 어찌 만든 그 누군가가 없이 저절로 생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저절로 생성된 것이라면 해와 달과 별들이 어떻게 어김없이 운행되며, 봄·여름·가을·겨울이 어떻게 차이가 나지 않고 질서 있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비록 집 한 칸, 그릇 한 개도 그것을 만든 사람이 없다면 생겨날 수가 없는데, 하물며 물과 땅 위의 그 많은 기계가 만일 그들을 주관하는 이가 없다면 어찌 저절로 운전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고 안 믿는 것은 보고 못 본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바로 이치에 맞느냐 안 맞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이러한 몇 가지 증거를 들어볼 때 지극히 높은 천주님의 은혜와 위엄을 확실히 믿어 의심치 아니하고 몸을 바쳐 신봉하며, 만일에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류의 당연한 본분인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900여 년 전에 지극히 어진 천주님이 이 세상을 불쌍히 여겨, 만인의 죄악을 속죄하여 구원하고자 천주님의 둘째 자리인 성자(聖子)를 동정녀 마리아의 배 속에 잉태시켰습니다. 그가 바로 유대국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성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