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나는 만인계(萬人契) 사장에 선출됐다. 당첨자를 뽑는 날, 행사장 앞뒤 좌우에는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온 수만 명이 참석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첨자를 뽑는 기계가 있는 곳은 가운데 있었고, 이곳에는 여러 임원이 함께 있었다. 그곳 주변의 네 군데 문은 경찰들이 지키며 보호해 주었다.
그때 표를 뽑는 기계가 고장이 나서 한꺼번에 대여섯 개의 표가 쏟아져 나왔다(표는 한 번에 한 개씩 나오는 것이 규칙임). 이것을 본 수만 명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사기라고 고함을 지르며 돌멩이와 몽둥이를 비 오듯 날렸다.
행사장을 경비하던 경찰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일반 임원들 중에는 다친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고, 저마다 살기 위해서 도망갔다. 그러다 보니 임원들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군중들은 사장을 쳐 죽이라고 크게 고함을 지르며 일제히 몽둥이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므로 사태가 위급하게 됐고 내 목숨은 경각에 달렸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생각해 보았다. 만일 지금 사장이란 자가 도망간다면, 회사의 사무는 다시 돌이킬 여지도 없을 것이고, 더구나 뒷날 명예를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능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형세가 너무도 다급한 나머지 나는 급히 주머니 속에서 12연발의 신식 총 한 자루를 꺼내어 오른손에 들고, 계단 위로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군중을 항해 크게 외쳤다.
“왜들 이러십니까? 왜들 이러십니까? 잠깐 내 말을 들으시오.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합니까? 여러분이 사리의 옳고 그름이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소란을 피우고 난동을 부리니 세상에 어찌 이 같은 야만적인 행동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지만 나는 죄가 없소이다. 내가 어찌 까닭 없이 목숨을 버린단 말이오? 나는 결코 죄 없이 죽지는 않을 것이오. 만일 나와 목숨을 겨룰 자가 있으면, 당당히 앞으로 나서시오!”
이렇게 사람들이 납득하도록 분명하게 말하자 군중들은 모두 겁을 집어먹고 물러나 흩어지고, 더 떠드는 자가 없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행사장을 에워싼 수만 명의 군중 사이를 뚫고 저 뒤에서부터 나는 새처럼 질주해 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내 앞에 다가서더니 나를 가리키며 호통을 치며 꾸짖었다.
“사장이라는 자가 이렇게 수만 명을 초청해 놓고는 어째서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오?”
문득 그 사람을 보니 신체가 건장하고, 기골이 빼어나며, 목소리도 우렁찬 것이 과연 당대의 영웅이라고 할 만했다. 나는 단 아래로 내려가 그의 손목을 쥐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형님! 형님! 노여워 말고 내 말을 들어보시오. 지금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내 본의가 아닙니다. 일의 진행이 잘못됐던 것인데 난동을 부리는 무리들이 공연히 소란을 일으켰던 것이오. 다행히 형님이 위태로운 내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옛글에 이르기를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이면 그 재앙이 천세에까지 미치고, 죄 없는 사람 하나를 살려주면 그 보이지 않는 덕의 영광이 만대에 미친다고 했소이다. 성인이라야 능히 성인을 알아보고, 영웅이라야 능히 영웅과 사귈 수 있다고도 했소이다. 그러니 형님과 내가 이제부터 100년의 교분을 맺는 것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