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옹진군에 사는 어떤 사람이 돈 5천 냥을 경성에 사는 전 참판 김중환에게 빼앗긴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이경주라는 인물에 관한 사건이다.
이경주는 본적이 평안도 영유군이고 직업은 의사였다. 당시 그는 황해도 해주에 와서 살면서 유수길(본래는 천민이었으나 재력가였음)의 딸과 결혼해 몇 년을 함께 사는 사이에 딸 하나를 낳았다. 그러자 돈 많은 유수길은 이경주에게 집, 논밭, 재산과 노비들을 많이 나눠 주었다.
그때 해주 지역 군부대의 하급 장교인 한원교라는 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이경주가 상경한 틈을 타 그의 아내를 꾀어내어 간통하고, 유수길을 위협해 이경주에게 준 집과 세간을 모두 빼앗은 다음 그 집에 버젓이 살고 있었다.
이경주가 그 소문을 듣고 경성으로부터 해주의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원교는 병사들을 시켜서 오히려 이경주를 구타해 내쫓으니, 그는 머리가 깨지고 유혈이 낭자해 눈 뜨고는 차마 못 볼 지경이 됐다.
그러나 이경주는 그곳이 타향이고 외로운 처지라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길이 없어 겨우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다. 이후 그는 상경해 육군 법원에 한원교를 고소해 7~8차례 재판을 했다. 재판 결과 한원교가 면직되기는 했지만, 이경주는 아내와 가산을 되찾지는 못했다. 이유는 한원교가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재판 후 한원교는 이경주의 부인과 함께 해주의 집과 재산을 처분해 경성으로 이사해 버렸다.
그런데 5천 냥을 빼앗긴 옹진 군민이나 이경주가 모두 내가 다니던 천주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었다. 이 때문에 내가 이 두 가지 사건을 해결할 대표로 뽑혀 두 사람과 함께 상경해 일에 관여하게 됐다.
먼저 김중환을 찾아갔다. 그의 집에는 귀한 손님들이 방에 가득히 앉아 있었다. 나는 주인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한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중환이 먼저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 왔는가?”
내가 대답했다.
“저는 본래 시골에 사는 어리석은 백성이라 세상 규칙이나 법률을 잘 모르므로 문의하러 찾아 왔습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을 물으러 왔는가?”
다시 내가 대답했다.
“만일 경성에 있는 어떤 고관이 시골 백성의 재산 몇천 냥을 강제로 빼앗아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법률로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김중환은 잠자코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것이 나와 관계된 일인가?”
“그렇습니다. 어른께서는 무슨 연고로 옹진 군민의 재산 5천 냥을 억지로 뺏고는 갚아 주지 않는 것입니까?”
“내가 지금은 돈이 없어 갚을 수 없으니, 나중에 갚을 계획일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같은 고대광실에 많은 물건을 풍부히 갖춰 놓고 사시면서 5천 냥이 없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이렇게 서로 묻고 답하면서 시비를 가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한 관원이 큰 소리로 나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 참판께서는 연세가 높은 고위 관리이고, 그대는 나이 젊은 시골 백성인데, 어디서 감히 그 같은 예의 없는 말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