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이경주는 재판관의 억지 법률 적용으로 3년 징역형을 받았다가 1년 뒤에 사면을 받고 풀려 나왔다. 그러자 한원교는 송 모, 박 모라는 두 사람을 거금을 주고 매수해 이경주를 사람이 없는 곳으로 유인한 다음 한원교가 직접 칼을 빼 이경주를 찔러 죽인 후에 달아났다. 참혹하게도 이경주는 이렇게 영세의 원혼이 되고 말았다. 슬프다! 재물과 계집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니, 마땅히 후세 사람이 경계할 일이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사법부는 범인을 잡으라고 명령을 내려 송과 박 두 사람과 그 계집을 붙잡아 법률로서 처형했다. 그러나 한원교는 끝내 잡지 못했으니 통분할 일이었다.

 

그 당시 각 지방 관리들은 함부로 학정을 일삼아 백성의 피와 기름을 빨았으니, 관리와 백성은 서로 원수처럼 보고 도둑처럼 대했다. 그러나 천주교인들은 포악한 명령에 항거해 관리들의 토색질을 받지 않았다. 그 때문에 관리들이 교인을 미워하기를 외국의 적과 다름 없이 했다. 그런데 관리들은 항상 자기들이 옳고 우리가 잘못됐다고 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좋은 일에는 마귀가 많고, 고기 한 마리가 바다를 흐린다더니 바로 그 짝이었다.

 

그 무렵, 난동을 부리며 떼를 지어 다니는 무리가 천주교인인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정부 관리들은 고관들에게 이를 보고하고 때는 이때다 하고 천주교인들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이때 황해도에는 교인들의 행패로 인해 행정과 사법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정부에서 이응익을 조사관으로 파견했다. 그는 해주에 와서 순경과 병사들을 각 고을로 보내 천주교회의 우두머리 되는 이들을 옳고 그르고를 묻지 않고 모조리 잡아버리니 교회 안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그는 나의 아버지도 잡으려고 순경과 병사들을 두세 차례 보냈으나 완강하게 버텨 잡아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다른 곳으로 피했지만, 관리들의 악행에 비통함과 분노를 못 이긴 채 탄식하며 밤낮을 술로 지내셨다. 그러다가 마음속의 화가 중병이 돼 앓으셨다. 아버지는 몇 달 뒤에 고향집으로 돌아왔으나, 치료해도 효험이 없었다.

 

한편 교회의 일은 프랑스 선교사가 보호해 준 덕분에 차츰 평온을 되찾게 됐다.

 

나는 다음 해에 무슨 볼일이 있어 황해도 문화군이라는 곳에서 지내다가 아버지께서 안악읍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내 친구 이창순의 집에 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곧장 친구 집으로 갔더니, 아버지는 이미 고향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였다.

 

나는 이창순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창순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자네 아버님이 이곳에서 큰 욕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셨네.”

 

나는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친구의 대답은 이러했다.

 

“자네 아버님이 신병을 치료하러 우리 집에 오셨다가 우리 아버지와 함께 안악읍에 있는 청나라 의사 서씨를 찾아갔다네. 진찰을 받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가 청나라 의사가 무슨 까닭이었는지 자네 아버지의 가슴과 배를 발로 차서 상처를 입혔다네. 그래서 하인들이 의사를 붙들고 때리려 하자, 자네 아버님이 하인들을 말리며 말씀하시기를 ‘오늘 우리가 여기 온 것은 병을 치료하러 온 것이니, 만일 의사를 때리면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남의 웃음거리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 명예를 생각해 참는 것이 좋겠다’고 해 모두 분함을 참고 돌아왔다네.”

 

이에 내가 말했다.

 

“내 아버지께서는 대인의 행동을 지켜서 그렇게 하셨지만, 나는 자식 된 도리로 어찌 참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그곳에 가서 잘잘못을 자세히 알아본 다음에 법에 호소해 그같이 행패를 부리는 버릇을 고치도록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랬더니 이창순도 좋다고 해 우리 두 사람은 곧 서씨를 찾아가 그 사실 여부를 물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