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야만스러운 청국인은 벌떡 일어나더니 칼을 빼 들고 내 머리를 향해 내려치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급히 일어나, 왼손으로는 내려치려는 그놈의 손을 막고, 오른손으로는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꺼내 그놈의 가슴을 향해 쏘는 시늉을 하자 그놈은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렸다.
이때 이창순은 상황이 위급한 것을 보고 자기 권총을 뽑아 들고 공중을 향해 두 방을 쏘았다. 서씨는 내가 총을 쏜 줄 알고 매우 놀랐고, 나 역시 어찌 된 일인지 몰라 크게 당황했다. 이창순은 급히 달려와 서씨의 칼을 빼앗아 돌에 쳐 두 동강으로 분질렀다. 우리 두 사람은 부러진 칼을 반 동강씩 집어서 서씨의 발아래로 내던지자, 그는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곧 법관에게 가서 전후 사정을 들어 호소했다. 그러나 법관은 외국인의 일이라 재판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서씨가 있는 집으로 왔으나, 고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류하기에 서씨를 내버려둔 채 나와 이창순은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일이 있은 지 5~6일이 지나 밤중에 어떤 놈들인지 7~8인이 이창순의 집에 뛰어들어 그의 부친을 마구 때리고 잡아간 사건이 벌어졌다. 이창순은 바깥방에서 자다가 화적 놈들이 쳐들어 온 줄 알고 권총을 뽑아 들고 뒤쫓아 가자, 그놈들이 이창순을 향해 총을 쏘았다. 이창순도 역시 총을 쏘며 죽기 살기로 돌격하자 놈들은 이창순의 부친을 버리고 도망갔다.
이튿날 알려진 바로는, 서씨가 진남포에 있는 청나라 영사에게 호소해 청국 순사 2명과 한국 순경 2명을 우리 집으로 보내 나를 잡아오라고 지시했는데, 그들이 우리 집으로 가지 않고, 잘못해서 이창순의 집으로 침입했던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을 편지로 받아본 나는 곧 길을 떠나 진남포로 가서 사정을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청나라 영사는 그 일을 경성에 있는 청나라 공사에게 보고했고, 공사는 한국의 외무부에 사건을 조회할 것이라 했다. 그래서 나는 즉시 경성으로 가서 그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외무부에 청원했다. 그랬더니 다행히 재판이 진남포 재판소에 회부돼 서씨와 함께 공판을 받게 됐다.
그런데 이 재판에서 서씨의 전후 만행이 나타나자 서씨는 그르고 내가 옳다는 것으로 판결이 끝나게 됐다. 뒤에 나는 어떤 청국 사람 소개로 서씨와 만나 서로 사과하고 평화를 유지하게 됐다.
그동안에 나는 홍 신부와 크게 다툰 일이 있었다. 홍 신부는 언제나 교인들을 압제하는 폐단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러 교인과 상의했다.
“거룩한 교회 안에서 어찌 이 같은 도리가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들이 당연히 경성에 가서 민 주교에게 홍 신부의 잘못을 청원하고, 만일 민 주교가 안 들어주면 당연히 로마 교황에게 가서 건의해서라도 기어이 이러한 폐습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모두들 내 말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때 홍 신부가 이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며 나를 무수히 치고 때렸다. 나는 분하기는 했으나, 치욕스러움을 참았다.
그랬더니 나중에 홍 신부가 나를 타이르며 말했다.
“내가 잠시 네게 화를 낸 것은 육체적인 감정으로 한 일이다. 내가 회개할 테니 서로 용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나도 역시 좋다고 하며 감사를 표했고, 우리는 지난날의 우정을 되찾아 서로 사이좋게 지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