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에 서상근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했다.
“지금 한국 형세의 위태롭기가 오늘내일하니 어찌하면 좋겠소? 무슨 좋은 계책이 없겠소?”
그러자 서상근이 대답했다.
“한국에 관한 일을 내게 말하지 마시오. 나는 일개 장사치로 수십만 원이 넘는 돈을 정부의 고관에게 빼앗기고, 이렇게 몸을 피해 여기 와 있는 것이오. 더구나 국가의 정치가 우리 같은 백성들에게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소. 그대의 말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만일 백성이 없다면 나라가 어디 있겠소? 더구나 국가란 몇몇 고관들의 것이 아니라 당당한 2천만 민족의 것입니다.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민권과 자유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민족의 세계인데, 어째서 홀로 한국 민족만이 남의 밥이 돼 앉아서 멸망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서상근이 대답했다.
“댁의 말이 옳기는 하나, 나는 다만 장사꾼으로서 입에 풀칠만 하면 그만이니 다시는 정치 얘길랑 하지 마오.”
두세 번 설득해 보았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와 마찬가지였다.
이때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게 탄식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생각들이 모두 이러하니, 나라의 앞날을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겠구나.”
여관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분통이 터지는 마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상해의 천주교회에 갔다. 한참 동안 기도한 다음 나오는데, 마침 신부 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어쩐 일이냐고 내 손을 잡았다.
그분은 바로 곽 신부였다. 곽 신부는 프랑스 사람으로 여러 해 동안 황해도 지방에서 전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절친한 사이였다. 그는 홍콩에서 상해를 거쳐 한국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정말 꿈만 같은 만남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같이 여관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무슨 일로 여기 왜 왔느냐?”
곽 신부가 재차 물었다.
“신부님께서는 지금 한국의 비참한 상황을 듣지 못했습니까?”
“나도 이미 오래 전에 들었지.”
“현재의 상황이 그러하니 어쩔 도리가 없이 가족들을 외국으로 옮겨 살도록 하려고 합니다. 외국에 살면서 이곳 동포들과 연락해 주변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우리나라의 억울한 사정을 설명해 공감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단번에 의거를 일으키면 목적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곽 신부는 아무 말 없이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나는 종교인이고 전도사라 정치에 전혀 상관이 없다마는 지금 네 말을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구나. 그래서 네게 한 가지 방법을 일러 줄 테니 이치에 맞거든 그대로 시행하고, 그렇지 못하거든 네 뜻대로 하도록 해라.”
“그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