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바로 이 해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에 와서 강제로 7조약을 체결하고 광무황제를 폐했으며, 대한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때 한국에서는 2천만 국민이 일제히 분발해 곳곳에서 의병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바야흐로 삼천리 강산에 포성이 크게 진동했다.

 

그때 나는 긴급히 행장을 꾸려 가족들과 이별하고 북간도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그곳에도 일본군이 방금 와서 주둔하고 있어 도무지 발붙일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서너 달 동안 그곳의 여러 지역을 시찰했다.

 

그러다가 다시 북간도를 떠나 러시아 영토로 들어가 엔치야라는 곳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그 항구 도시에는 한국인이 4천~5천 명이나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인학교가 몇 개 있었고, 청년회도 있었다. 당시 나는 청년회에 가담해 임시 감찰에 뽑혔다.

 

그곳에는 이범윤이라는 분이 살고 있었다. 그는 러일전쟁 전에는 북간도 관리사에 임명돼 청나라 군대와 많은 전투를 치렀으며,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러시아군과 힘을 합해 서로 도왔다. 그러다가 러시아 장병들이 일본군에 패전해 귀환할 때 그들과 함께 러시아 영토로 들어와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분이었다.

 

나는 그분을 찾아뵙고 말했다.

 

“각하께서는 러일전쟁 때 러시아를 도와 일본을 공격했는데, 그것은 하늘의 뜻을 어긴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 일본은 동양의 대의명분을 내걸었습니다. 즉, 동양평화와 대한의 독립을 굳건히 할 의지를 갖고 이를 세계에 선언한 뒤 러시아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뜻에 순응한 것이었기에 일본은 다행히도 크게 승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 각하께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일본을 공격한다면, 그것 또한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이토는 그 승리에 자만해 터무니없이 자기만 잘났다고 우쭐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교만하고 극악해져 임금을 속이고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며, 이웃 나라와의 의리를 끊고 세계의 신의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을 반역하는 것이라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각하께서는 때를 놓치지 마시고 속히 큰 일을 일으키셨으면 합니다.”

 

그랬더니 이범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인즉 옳다마는 자금이나 무기를 마련할 길이 전혀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말했다.

 

“조국의 흥망이 아침이냐 저녁이냐 하는 위급한 지경인데, 팔짱을 끼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자금과 무기가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의 뜻을 따르기만 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이제 각하께서 의거를 일으키기로 결심만 하신다면 제가 비록 재주는 없지만 만분의 일의 힘이라도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범윤은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곳에는 훌륭한 인물 두 분이 또 있었다. 하나는 엄인섭이요, 또 한 사람은 김기룡이었다. 두 사람은 담략과 의협심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나는 두 사람과 의형제를 맺었다. 엄인섭이 큰형이 되고 내가 그 다음, 김기룡이 셋째가 됐다. 우리 세 사람은 의리가 깊고 정이 두터웠다. 우리는 모여서 올바른 일을 할 것을 계획하고, 여러 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많은 한국인을 만나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