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대들의 하는 말을 들으니 과연 충성스럽고 의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대들을 살려 보내 줄 테니 돌아가거든 그런 난신적자를 쓸어 버려라. 만일 또 그 같은 간악하고 음흉한 무리들이 이유 없이 전쟁을 일으켜 동족을 괴롭히고 이웃 나라를 침해하는 여론을 조성하거든 그 자를 쫓아가 제거해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런 자가 10명이 되기 전에 동양평화가 이뤄질 것이다. 너희들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기뻐 날뛰며 그렇게 하겠다고 하기에 곧 풀어주었다.
그 후 장교들이 불평하며 내게 말했다.
“어째서 포로로 잡은 적들을 놓아 주는 것이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현재 만국 공법에 포로가 된 적병을 죽이라는 법은 없다. 어느 곳에 가뒀다가 뒷날 배상을 받고 돌려보내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말하는 것이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의로운 말이라 놓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여럿이 말했다.
“적들은 우리 의병 포로들을 잡으면 모조리 참혹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도 적을 죽일 목적으로 이곳에 와서 풍찬노숙하고 있소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생포한 놈들을 몽땅 놓아 보낸다면 우리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는 대답해주었다.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적들이 그같이 폭행을 자행하는 것은 하느님과 사람을 다 함께 분노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마저 저들과 같이 야만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가? 또한 그대들은 일본의 4천만 인구를 모두 죽인 다음에 국권을 회복할 계획인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수 있다.”
이렇게 간곡하게 타일렀다.
그러나 논의가 들끓으며 여러 사람이 복종하지 않았다. 장교들 중에는 부대를 이끌고 멀리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후 어느 날, 일본 병사들이 우리를 습격했다. 충돌한 지 4~5시간이 지나는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사이 날은 저물고 폭우가 쏟아져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장병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얼마나 죽고 살았는지조차 헤아리기 어려웠다. 사태가 어쩔 도리가 없어 나는 수십 명과 함께 숲속에서 밤을 지냈다.
이튿날 60~70명이 서로 만나 그동안의 상황을 보니, 부대가 각기 흩어져 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은 이틀이나 먹지 못해 모두 춥고 굶주린 기색이었고, 제각기 살려는 생각뿐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병사들은 복종하려 하지 않았고, 기율도 지키지 않게 돼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흩어진 무리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마침 적 복병들의 또 한 번의 공격을 받아 남은 사람들마저 흩어져 다시는 모으기가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