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풀려나 죽음을 면하고, 친구 집을 찾아가 다친 곳을 치료하며 그해 겨울을 그곳에서 지냈다.
이듬해(1909년) 정월, 나는 엔치야 지방으로 돌아와 동지 12인과 같이 상의하면서 말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으니 남의 비웃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오. 이뿐만 아니라 특별한 단체를 만들지 않고는 아무런 일도 도모하지 못해 목적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오. 그러니 오늘 우리 모두 손가락을 끊어 동맹의 표시를 한 다음에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단체를 만들어 기어코 목적을 달성토록 하는 것이 어떻소.”
그러자 모두가 따르겠다고 했다. 열두 사람은 각각 왼손 약지를 끊어 그 피로 태극기 위에 대한독립이라는 네 글자를 크게 썼다. 쓰기를 마치고 대한독립만세를 일제히 세 번 부른 다음 하늘과 땅에 맹서하고 흩어졌다.
그 후 나는 각처를 왕래하며 교육에 힘쓰고, 민의를 모으고, 신문을 읽는 것을 일로 삼았다.
그 무렵 갑자기 정대호의 편지를 받았다. 나는 곧바로 가서 그를 만나 고향소식을 자세히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우리 가족들을 데려오는 일을 부탁하고 돌아왔다.
또한 봄 여름 무렵에 동지 몇 사람과 함께 한국으로 가서 여러 가지 동정을 살피고자 했으나,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부질없이 세월만 보냈다.
그 사이 어느덧 초가을이 됐으니 그때가 1909년 9월이었다. 그때 나는 엔치야 방면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루는 아무 까닭도 없이 마음과 정신이 울적해지고 초조해져 견딜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을 스스로 진정하기 어려워 친구 몇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고 하오.”
“왜 그러는 것이오? 왜 갑자기 아무런 기약도 없이 졸지에 가려는 것이오?”
“나도 그 까닭을 모르겠소. 공연히 마음에 번민이 일어나서 도저히 이곳에 더 머물러 있을 생각이 없소. 그래서 떠나려는 것이오.”
그들이 다시 물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는 것이오?”
그래서 나는 무심코 그냥 대답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소.”
그들은 무척 괴이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 역시 무의식중에 그런 대답을 했던 것이다. 친구들과 서로 작별하고 길을 떠나 보로실로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기선에 올라탔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러 들으니 이토 히로부미가 얼마 안 있어 이곳에 올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신문을 여러 개 사 보았다. 과연 그가 며칠 후 하얼빈에 도착하기로 돼 있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남몰래 기뻤다.
“몇 년 동안 소원하던 목적을 이제야 이루게 되었구나! 늙은 도둑이 내 손에서 끝나는구나!”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에 온다는 말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말이요, 하얼빈에 가야만 일을 틀림없이 성공할 것 같았다. 당장 일어나 하얼빈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다.
그래서 마침 이곳에 와서 사는 한국 황해도 의병장 이석산을 찾아갔다. 이석산은 그때 마침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나려고 문을 나서는 참이었다. 나는 급히 그를 불러 밀실로 들어가 돈 1백 원만 꿔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사태가 여기에까지 이르자 하는 수 없이 그를 위협해 1백 원을 강제로 빼앗았다. 자금을 갖고 돌아오니 일의 반은 이뤄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