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러시아 영토인 엔치야에 도착했다. 친구들을 만났으나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피골이 상접해 전혀 옛 모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도저히 살아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십여 일 묵으며 치료를 받은 후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 그곳에서는 동포들이 환영회를 마련하고 나를 불렀으나 나는 극구 사양하면서 말했다.

 

“패전한 장수가 무슨 면목으로 여러분들의 환영을 받을 수가 있겠소.”

 

그러나 여러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서 나를 환영해 주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전쟁터에서 항상 있는 일인데 무엇이 부끄럽소? 더구나 그같이 위험한 곳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니 어찌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

 

얼마 후 다시 그곳을 떠나 하바로프스크 쪽으로 향했다. 기선을 타고 흑룡강 상류 수천여 리를 둘러보았다. 한인 저명인사의 집을 방문한 다음, 다시 연해주의 수찬(현재 파르티잔스크)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혹은 교육에 힘쓰기도 하고, 혹은 단체를 조직하기도 하면서 여러 곳을 두루 다녔다.

 

어느 날 산골짜기 아무도 없는 곳을 지나갈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6~7명의 흉악한 놈이 뛰쳐나와 나를 묶으며 소리쳤다.

 

“의병대장을 잡았다.”

 

그때 나와 동행하던 몇 사람은 도망가고 말았다.

 

그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어째서 정부에서 엄금하는 의병 모집을 감히 하는 것이냐.”

 

나는 대답했다.

 

“현재 소위 우리의 대한 정부가 겉으로는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이토라는 자의 개인 정부다. 그러므로 한민족이 정부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은 실상은 이토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놈들은 나를 두말할 것 없이 때려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수건으로 내 목덜미를 묶어 눈 바닥 위에 쓰러뜨리고 무수히 두들겨 팼다.

 

나는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네놈들이 만일 여기서 나를 죽이면 너희는 무사할 것 같으냐? 조금 전에 나와 동행한 두 사람이 도망해 갔으니, 바로 우리 동지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들이 나중에라도 네놈들을 반드시 찾아내 모조리 다 죽일 것이니 알아서들 해라.”

 

내 말을 듣고 나서 그들은 서로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마 나를 죽여서는 안 되겠다 논의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들은 나를 이끌고 산 속 어떤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어떤 놈은 나를 때리고, 어떤 놈은 말렸다. 나는 좋은 말로 풀어줄 것을 여러 번 권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답은 안 하고 저희들끼리 얘기했다.

 

“김씨, 이 일은 처음부터 당신이 꾸민 일이니 당신 마음대로 해. 우리는 다시 상관하지 않겠어.”

 

마침내 김씨라는 자가 나를 끌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나는 한편으로 타이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항도 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어찌할 수가 없었던지 아무 말 없이 나를 놓아주고 가 버렸다.

 

그들은 모두 일진회의 남은 도당들로서 본국에서 이곳으로 피난 와서 사는 자들이었는데, 마침 내가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같은 짓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