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 위에 홀로 앉아 나를 비웃으며 내 자신에게 말했다.
“어리석도다. 나 자신이여! 저런 무리들을 데리고 무슨 일을 꾀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랴.”
나는 다시 분발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사방을 수색해보았다. 다행히 세 명을 만나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를 서로 의논했다. 그런데 세 사람의 의견이 모두 달랐다. 하나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야 한다 하고, 하나는 자살하고 싶다 하고, 또 하나는 차라리 일본군의 포로가 되겠다고 했다.
나는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문득 시 한 수를 동지들에게 읊어 주었다.
‘사나이 뜻을 품고 나라 밖에 나왔다가 큰일을 못 이루니 몸 두기 어려워라. 바라건대 동포들아, 죽기를 맹서하고 세상에 의리 없는 귀신은 되지 말자.’
나는 시를 다 읊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모두 뜻대로 하라. 나는 산 아래로 내려가서 일본군과 한바탕 장쾌하게 싸우겠다. 대한국 2천만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된 의무를 다한 다음에 여한이 없이 죽을 것이다.”
그리고 총을 갖고 적진을 바라보며 가노라니, 그중의 한 사람이 뒤따라와 붙들고 통곡하면서 말했다.
“장군님의 의견은 큰 잘못입니다. 장군은 다만 한 개인의 의무만 생각하고, 수많은 생명과 훗날의 큰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지금의 상황으로는 비록 죽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금과 같이 소중한 몸을 어찌 초개같이 버리려고 하십니까? 지금 당장 강동(러시아 영토 내 지명)으로 다시 건너가셔야 합니다. 그 후 좋은 기회를 기다려서 다시 큰일을 도모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 깊이 헤아리지 않는 것입니까?”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 하여 네 사람이 동행해 길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도중에 다시 3~4명을 더 만나 함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그날 밤 장맛비가 그치지 않고 퍼부어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게 돼 또다시 길을 잃고 서로 흩어져 나와 두 사람만이 동행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그곳의 산천과 도로 등 지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이같이 헤맨 지 4~5일이 지나는 동안 한 끼도 못 먹고, 신발조차 신지 못해 춥고 배고픈 그 고생은 견디기 힘들었다. 우리는 풀뿌리를 캐어 먹고, 담요를 찢어 발을 싸맸다. 그렇게 서로 위로하고 보호하면서 가노라니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두 사람에게 당부했다.
“내가 먼저 가서 밥도 얻고 길도 알아 올 것이오. 두 사람은 숲 속에 숨어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오.”
혼자서 인가를 찾아 내려갔더니, 그 집은 일본군의 파출소였다. 마침 일본 병사들이 횃불을 밝혀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것을 보고 피해 산 속으로 돌아와 두 사람과 의논한 후 다시 달아났다.
그때 나는 기력이 다하고 정신이 어지러워 땅에 쓰러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하늘에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죽이려면 빨리 죽게 해주시고, 살리려면 빨리 살게 해주소서.”
기도를 마치고 나서 냇물을 찾아 배가 부르도록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무 아래 누워 밤을 지냈다.
이튿날 동지 두 사람은 너무도 괴로운 나머지 탄식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타일렀다.
“너무 걱정들 마시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인데 근심해서 무엇하리오? 사람은 극심한 곤란을 겪은 다음에야 반드시 남다른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고, 죽음의 땅에 빠진 다음에야 살아나는 것이라오. 이렇게 낙심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소? 하늘의 뜻에 맡기고 기다려봅시다.”
그리고 그날 세 사람은 대낮에도 인가를 찾아 헤맸다. 다행히도 산간벽촌에서 인가 한 채를 찾아냈다. 주인을 불러 밥을 구걸했더니 주인이 조밥 한 사발을 주면서 말했다.